자라 외 1편 박미향 컨테이너 박스, 바람으로 바른 벽지를 두르고 그는 누워 있다 오십여 년 다리 하나로 서서 나머지 다리를 견인하는 동안 그의 목은 없어졌다 종일 구두를 닦았다 구두가 밥을 먹여 주었다 검은 밥을 먹었다 밤마다 검은 별이 떴다 욱신거리는 저녁을 담배연기로 칭칭 감아 묶으며 물집이 난 왼쪽 엉덩이를 오른쪽이 달랬다 웅크린 목을 꺼내 구두 밑창을 확 뜯어버리고 싶은 날은 보고 싶은 첫사랑도 지웠다 오른쪽 손금에 굳은 길이 하나 더 생겼다 만신창이의 저녁, 서릿발 돋은 윗목에 벌레가 웅크리고 있다 추위가 지나가면 저 녀석 벌떡 일어나 목을 길게 빼고 빠르게 걸어가겠다 한때 미치도록 갖고 싶었던 다리를 여섯 개씩이나 움직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