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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학동에는 홍예문이란 터널이 있다 / 김안

인천  송학동에는 홍예문이란 터널이 있다           시집 『귀신의 왕』, 「시인 에세이」에서                 김안     인천  송학동에는 홍예문이란 터널이 있다. 1908년 일본의 공병대가 만든 문으로, 산의 구멍을 뚫었다고 하여 '혈문血門'이라 불렸던 곳이다. 가파른 오르막 정상에 한 대 정도의 차가 오를 수 있는 작은 터널이다. 당시 혈문을 기준으로 일본인 조계와 조선인 거주지가 나뉘어 있었다. 최근 어떤 일을 하다가 1923년 기사 중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았다. 혈문 벽에다 누군가 커다랗게 '수평사원래인기념水平社員來人記念'이라 낙서를 해놓았다는 것. '수평사水平社'는 일본의 최하층민인 부라쿠민部落民 해방운동을 위해 1922년 설립된 단체이다. 수평사의 창립선언문은 ..

한 줄 노트 2024.11.22

카르마 외 1편/ 김안

카르마 외 1편      김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제 여기는 낯선 방이다. 이 방이 내게 어떤 꿈을 꾸게 할까. 난 자리가 티가 난다는 말은, 부재란 윤리와 면피를 꿰매 붙인 자리라는 뜻 같구나. 침상 위에는 밤보다 긴 이불. 아버지가 누웠던 자리에는 병이 여전히 남아 홀로 앓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익숙한 것은, 저 헐떡이는 병뿐이니 나는 스스럼없이 가서 그 위로 눕는다.   오래 앓다 햇빛 아래 선다. 단단하고 검은 돌에 부딪히는 부드럽고 하얀 물처럼 11월이 내 겨드랑이를 휘감고 명치가 저리다. 하얀 꽃잎이 중얼거리며 떨어진다. 전날 밤, 천사가 나의 방문을 지나갔는데 그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눈치챌까 두려웠다. 그때 밤이 재빠른 손길로 나의 숨을 막았다. 순간, 내 몸속에서 ..

기일/ 김안

기일      김안    11월의 늦은 오후, 멍한 상태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직까지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건 내일도 내내 이렇게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때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기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게 식사는 잘 챙겨 먹는지, 물으시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나는 오랜만에 뵌 어머니 모습에 얼떨떨하면서도 반가웠다. 철모르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강아지 같은 마음이었다. 엄마, 나 어렸을 때 키웠던 강아지 이름이 뭐였죠? 무슨 소리니? 강아지라니. 내가 그 강아지가 된 마음이라니까, 오랜만에 엄마를 보니. 냉장고에서 하얗고 서늘한 빛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어두고서 내게로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린 강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