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백합
강문출
처음 봤을 때 포켓몬의 식스테일이 떠올랐어요
여섯 개의 희고 긴 꽃잎에 혼이 나갔거든요
저 꽃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다는 증거처럼요
벌 · 나비 윙윙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여름날 뭉게구름을 탄 기분이었으니까요
꼬리가 여섯 자란 구미호를 생각했어요
자태가 이국적이라 속뜻을 모를 때가 가끔 있었고요
꽃은 해마다 새로 피지만 나는 늘 처음에 머물러 있어요
오랜 진행형은 활력도 되지만 갈수록 버거워요
꽃은 날마다 사랑을 생활하고 나는 늘 사랑을 공부해요
-전문-
해설> 한 문장: 이번 시집의 표제작 「거미백합」이 노래하는 사랑의 외곽선 또한 순수한 나신의 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미백합(Spider Lily)은 구미호를 모티브로 여섯 개의 꼬리를 가진 '식스테일'과 닮은 수선화과 외래종 꽃이다. 희고 긴 거미 다리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꽃잎 모양의 시각적 이미지는 '포켓몬의 식스테일'에서 '꼬리 여섯의 구미호'로 변주되고 '사랑을 생활하는 꽃'으로 상징성이 확장된다. '나'는 여섯 개의 독특한 꽃잎에 혼이 나갈 만큼 오래전부터 좋아한 꽃이라는 '증거'를 확인한다. 꽃은 때가 되면 늘 피어나지만 '나'는 첫눈에 반한 그 꽃에 머물러 있다. 거미백합은 처음 봤을 때부터 혼이 나가고 오래전부터 좋아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꽃이며, 속뜻을 모를 때가 있었지만 늘 처음에 머물게 하는 꽃이다. '나'에게 거미백합은 "뭉게구름을 탄 기분"처럼 사랑의 파동이 번질수록 버거운 대상이다. '나'는 사랑하는 첫 마음을 감당하기 위해 늘 사랑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 (p. 시 13/ 론 113-114) <배옥주/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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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거미백합』에서/ 2024. 11. 5. <한국문연> 펴냄
* 강문출/ 부산 기장 출생, 2011년『시사사』로 등단, 시집『타래가 놀고 있다』『낮은 무게중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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