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5 3

이기적 사물들 외 1편/ 이초우

이기적 사물들 외 1편      이초우(1947-2023, 76세)    숟가락의 뇌에는 좌뇌만 있는 걸까   뽀글뽀글, 끓기를 다한 국 맛본 숟가락  내가 숟가락을 손에 쥔 채 국그릇을 꺼내러 갈 때였어  영문도 모르게 친구와의 갈등이 불쑥, 그 순간  토라져 버린 숟가락, 내 손바닥을 빠져나가   속 좁은 미꾸라지처럼 온통 빠둥빠둥 바닥에 나뒹굴었지   내가 냉장고에서 멸치 통을 꺼낼 때였어  공사 현장에서 민원인, 내 머릿속에서 삿대질에다 땡고함  지르는 소리, 그 멸치통  내 다섯 손가락 팽개치고 화들짝 바닥에 떨어져  제 내장 다 비워버렸지  물도 없는 주방 전체가 커다란 수조 되어 반짝반짝 멸치 떼들  휙휙 떼 지어 헤엄쳐 다녔어   내 육신, 지독히도 긴 구직 한파  믿었던 심사 내 이름 사..

하나 되는 시간/ 이초우

하나 되는 시간     이초우(1947-2023, 76세)    어떨 땐 내 육신, 영혼을 옆구리 안쪽 독방에 꼬깃꼬깃 날을 죽여 가두어 놓고는, 한동안 전전긍긍하게 했다오   그러다 때론 복수를 한 건지  내 영혼 먼눈팔다, 거구의 내 육신을 패대기칠 때가 있었지  그럴 땐 메추리알보다 작은 영혼 눈만 멀뚱멀뚱 멍든 내 육신에게  두 손 비벼 용서를 구하기도 했어요   젊은 날 범퍼에 받힌 허벅지, 어쩔 수 없이 내 영혼에게 통증이란 칼이 주어져, 미간 가운데 굵은 세로줄 하나 그어놓기도 했지요   한때 우울증에 허우적거린 영혼, 육신에게 피해 입히지 않으려 새벽잠 대신, 온종일 서너 번씩 쪽잠으로 내 육신 편하게도, 그러다 정말  새벽 한 시만 되면 어김없이 내 육신과 영혼 몸을 섞는 화해로, 남들이..

이승하_5편의 시로 쓴 귀향일기(발췌)/ 홍수기억주의보 : 최진화

홍수기억주의보      최진화    그 새벽  물이 들어온 마을은  깊이 가라앉거나 어디론가 떠밀려갔다   소들은  오산 부처님 곁으로 올라가  물에 잠긴 자기 집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소는 바다로 떠내려가고  어떤 소는 지붕 위에서 울고 있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여름이 끝날 때까지 진흙과 함께 뒹굴었다   범람했던 그 강물은 어디로 갔나   유난히도 잘 자란 서시천 코스모스 물결 따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을을 찍고 있다   꽃들은 물이 들어온 그 새벽을 기억하는지   잠겼던 마을이 아직도 퉁퉁 불어  꽃잎마다 흔들리고 있다     -전문-     * 구례 홍수 : 2020. 8. 8.    ▶ 5편의 시로 쓴 귀향일기(발췌)_이승하/ 시인 · 대학교수  마을 전체가 가라앉았고 소들이 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