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191

박선옥_미켈란젤로 유년의 길과 함께(발췌)/ 자작시 : 미켈란젤로

자작시     미켈란젤로(1475-1564, 89세)    잉크와 펜은 다를 게 없지만  잘된 시도 나오고 모자란 시도 나오며  그저 그런 시도 있다네  만약 대리석이 고귀하거나 천박한 형태가 있다면  그건 순전히 망치를 든 사람 탓일세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도 소용없다네  다만 대리석이 제 몸을 드러내야 하지  대리석이 일러 주는 대로 그 마음을 읽고  조각가는 손을 놀려서 빚어낼 따름이라네       -전문-   ▶미켈란젤로 유년의 길과 함께(발췌) _박선옥/ 시인  노벨라를 떠나기 직전까지도 제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피렌체인의 뇌리에서 페테라르카, 단테, 보카치오 이들의 시에 대한 사랑은 떨칠 수 없는 취미였을까. 시는 르네상스 톱니바퀴의 한 축처럼 함께 했다. 인류의 한 시대를 관통하게 해 ..

외국시 2024.10.11

김미영_인터넷 시단의 새로운 주체···(발췌)/ 깊은 밤의 시골 국도 : 장이랑

깊은 밤의 시골 국도午夜的鄕村公路      장이랑江一郞     김미영/ 復旦大學校 연구원   깊은 밤, 시골 국도는 이상스레 적막하다  달빛이 어두운 모래알 위를 구른다  어쩌다가 야간 화물차 한 대가  소리 없이 스쳐가  속도에 놀란 반딧불이는  별똥별처럼, 더 깊은 밤으로 빠져든다  이때, 어떤 이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시골 국도를 따라  새벽까지 고요히 걸어낸다  잠들지 않은 한 마을은, 멀리 떠나는 이를 눈으로 배웅한다  물처럼 찬 밤을 빌려  불 꺼진 저 먼 곳으로 향해 걷는다     -전문-   ▶메인터넷 시단의 새로운 주체, 저층 시인_2. 지식인의 풀뿌리 시(발췌) _김영미/ 復旦大學校 연구원   장이랑의 「깊은 밤의 시골 도로」를 보면, 시의 톤이 상당히 절제돼 있다. 격앙되거나 울부짖지..

외국시 2024.09.22

박선옥_생가, 카프레세 미켈란젤로를 찾아가다(발췌)/ 자작시 : 미켈란젤로

자작시     미켈란젤로(1475-1564, 89세)    큰 대리석의 부름이 마음을 쉽게 끌고 갔다.  돌 하나에 팔이 나오고, 돌 하나에 다리가 나와  밤 늦게까지 미켈란의 영혼을 붙잡고 있었다.  그건 돌이 아니라 단단한 살점이었다.  금방 산에서 데려온 돌들은 미켈란의 망치질에 잘 순응했다.  불꽃을 튀겨내면서 자신의 살점을 떨어내주는 대리석  오래된 돌일수록 마음을 사로잡아 야망을 더욱 부채질한다.  사람의 늘어나는 주름만큼 돌도 사람을 닮아가는 육신,  그것은 이미 예비된 사람의 환생인 것이다.     -전문-    ▶생가生家, 카프레세 미켈란젤로를 찾아가다(발췌) _박선옥/ 시인  미켈란은 신장 결석이 따라다녔다. 돌가루는 그의 입을 통해 결석으로 뭉쳐지는 고통을 주었다. 아욱 뿌리, 아욱 ..

외국시 2024.09.06

뒷걸음질만 하는 어머니의 말/ 칭파 우(Ching-Fa Wu)

뒷걸음질만 하는 어머니의 말          하카 시에서 번역됨      칭파 우(가오슝 메이롱, 1954~ )     "내가 어렸을 땐,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는 옛날부터 말을 끌고 나오셨습니다.  "훨씬 나은 너희와는 달랐어."   어머니는 말을 어떻게 다룰 줄 몰랐습니다.  말은 뒷걸음질 치며  원을 그렸습니다.   "내가 어렸을 땐,  삶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이지 먹을 쌀이 없었어,  노랗게 잘게 썬 고구마만  솥 바닥에,  힘을 다해 긁어모았어,   바닥의 쌀 몇 알을 얻으려고."   "어렸을 적  삶은 너무 힘들었어,  훨씬 나은 너희와는 달라."   어머니는 말을 끌고,  뒷걸음질로  두 번이나 돌았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  고기도 없고  할아버지가 산에 덫..

외국시 2024.08.28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요/ 팡츠 창(Fang-Tzu Chang)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요       팡츠 창(타이완, 1964~ )    햇빛이 쏟아집니다.  구름이 몰려와 갈라진 틈을 에워쌉니다.  새싹은 당당히 뻗어나갈  힘을 얻습니다   폭풍우 속에서는  또 다르죠.  정겹고,  세심히,   자라나는 것들을 지켜봅니다,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요.   마음속의 묘목은  어제의 죽음으로 자랍니다.  빛과 그림자가 마음껏 즐기도록 두세요  시간이 모든 것을 앗아 갈 때까지  뿌리들은 깊게 얽혀 있죠.     -전문(p. 150)    * 블로그 註: 영역본은 책에서 일독 要   -----------------  * 『상징학연구소』 2024-가을(15)호 > 에서   * 팡츠 창(Fang-Tzu Chang)/ 1964년 타이완 출생, 1990년대 하카 쓰기..

외국시 2024.08.27

무고한 사람들/ 유리 탈베(Juri Talvet)

무고한 사람들      유리 탈베(에스토니아, 1945~ )    이 공허한 회랑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케르베로스의 얼굴들이 돌아봅니다.  한 놈은 내 어린 시절의 불빛에 으르렁거리고,  다른 놈은 내 혈통의 슬픈 무덤을 파헤치고  또 한 놈 가장 혐오스런 건, 내 우정과 사랑의 발자취에 코를 갖다 댑니다.  고통 속에 그저 막막할 뿐입니다.  지옥이 여기서 시작합니다  저주받은 자들은 무죄이니 의심하는 자들은  신성한 명령을 외면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불타는 육신으로 종잇장을 찢을 권리가 있었으니  믿는 이들은 순수하였으니,  고통스런 자들은 재가 되어 날아올라  영원의 바다를 날아갑니다.  이 지옥, 이 회랑에서 고통받는 이들은 모두 무죄입니다.     -전문(p. 56-57..

외국시 2024.08.26

박성준_"연습하는 마음"의 거부(발췌)/ 칠흑 : 안숭범

칠흑漆黑     안숭범     병원을 지났다, 누구는 지금도  아파할 것이다, 좀처럼 하지 않는 표정을 생각해 냈다, 반쯤 내려진 제과점 셔터가 주인을 두 동강 냈다, 살아남은 빵들만 냄새로 다녀갔다, 휴대폰이 오른손으로 기어 왔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했으므로, 누구와는 아무 숫자도 교환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구름은 또 거기서 서성였다, 오늘 하루만도 수없이 이 길 저길을 오갔다, 당신도 알 것이다, 그렇게 오는 밤은 구름의 망설임을 머금는다, 버스가 멀리서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다, 멀어지는 것들 사이에 남은 건, 매연이거나, 사랑이거나, 매연같은 사랑이다, 그런 식으로 침침한 채 버스와 사람은, 서울역과 우체통은, 하수도와 전선은 곧잘 닮아간다, 놀랄 일이 아니다, 그렇게 모든 불투명은 떠..

외국시 2024.07.25

이태동_ 봄의 들판에서···/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었다 : 윌리엄 워즈워스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었다      윌리엄 워즈워스(영국 1770-1850, 80세)     이태동 번역(영문학자, 서강대 명예교수)    계곡과 산 위에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다 나는 문득 보았네.  수없이 많은 금빛 수선화가  호숫가 나무 아래  미풍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   은하수에서 빛나며  반짝이는 별들처럼 길게 연달아  수선화들은 호반의 가장자리 따라 끝없이 줄지어  뻗어있었네.  나는 보았네. 무수한 수선화들이  흥겨워 머리를 흔들며 춤추는 것을.   수선화들 옆 물결도 춤췄었으나,  환희에 있어 그것들이 반짝이는 물결을 이겼었지.  이렇게 함께하는 즐거움 속에  시인이 어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나는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이 광경이  어떤 값진 것을 내게..

외국시 2024.07.24

정한아_두더지 언덕으로 산 만들기(발췌)/ 브라네 모제티치 詩 : 김목인 譯

내가 지켜보는 동안 개는 들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닌다     브라네 모제티치/ 김목인 譯    내가 지켜보는 동안 개는 여기저기를 뛰어다닌다. 이따금 킁킁대고는 다시 달린다. 원을 그리며 가서. 주로 두더지 언덕들 주위에서 냄새를 맡더니. 곧장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나는 내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에 산만해진다. 곧 갈게요. 뭐하고 계세요? 저명한 여성 시인이 묻는다. 독서 중인가요? 집필 중? 공원이 아마 멋지겠죠. 아뇨, 아뇨, 나는 당황한다. 두더지 언덕들을 보고 있어요······ 저의 개가 그 속에 코를 들이밀어서요. 오, 정말요? 전 작업 중이실 거라 생각했어요. 알겠어요, 끝나면 전화할게요. 개는 이제 가장 큰 언덕부터 시작해 킁킁거리며 맹렬히 땅을 판다. 나는 총명한 시를 쓰기에는 너무..

외국시 2024.07.20

한성례_전통 서정을 구축한 디아스포라의 재일시인/ 무사시노 : 안준휘

무사시노武蔵野     안준휘安俊暉 / 한성례 譯    무사시노에  뽕나무 오디열매가 익어갈 무렵  그대와   만났네   무사시노의  졸참나무 단풍  잎 하나는  그대와 나의  정표   자욱한 비안개  속  인생의 시간  쉬지 않고  지나가네   내가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때  무사시노에 있었네   그 무렵  직박구리만  울고 있었네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신에게 갚는 것  나 자신의  죄를 갚는 것  무의 사랑에  눈 떠  가는 것   그대  나를  이국적이라  하네  내 안에  아버지 살아 계시고  어머니 불 밝히시네  내 고향  부모님 고향  갈댓잎  바람개비 돌고 있네   내 고향  산철쭉  보니  아버지 고향  경주의  산철쭉 생각나네   지금 내 무덤 위  솔바람 울고  멧새 지저..

외국시 202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