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질경이꽃 외 2편/ 강문출

검지 정숙자 2024. 11. 18. 16:02

 

    질경이꽃 외 2편

 

     강문출

 

 

  대학병원 심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를 봤습니다 오랜만에 가까이 앉아서 봤습니다 어릴 적 신작로 길섶에서 본 달구지 바퀴에 짓밟히고 뭇사람들 발자국에 짓밟혀 상처투성이인 질경이 같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던 그를 길섶 안쪽으로 옮겨주고 싶었습니다만 내 힘이 모자라고 그의 삶이 벅차서 호미나 만지막만지작하다 말았습니다 내가 시들어 가던 질경이 잎사귀에 손을 대자 잠시 생기가 도는데 그 작은 떨림이 천상으로 오르려는 마지막 날갯짓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울음보다 더 슬픈 웃음을 지었습니다 난생처음 대엿새 쉬었다 가겠거니 하고 병원에 들렀다가 온몸이 망가진 줄도 모르고 대엿새 만에 떠날 줄도 모르고 메스가 제 몸을 헤집었는데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웃었습니다 푸르게 웃기 위해 억척같이 살아온 반백의 박복한 시간들이 생의 레일에서 멈춰 서려는 듯 덜컹거리기 시작하자 때 이르게 질경이꽃 하얗게 피고 나는 무력하게, 무력하게 흩날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전문(p.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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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을 자아내는 최고의 도구가 눈물인 것처럼

 

 

  일인실은 숨어 앉은 암자처럼 고요했다

  핼쑥한 그의 말이

  먼 풍경소리처럼 내 귀를 곤두서게 했다

 

  병도 물과 같아서 모이면 권력이다

  낮고 약한 곳부터 덮치는 거라

  그러니 자네는 수시로

  울음 꼭지를 열어가며 사시게

  비워가며 가볍게

  가볍게

 

  마음 주머니의 글썽임을 들킨 나는

  저만치 강 건너를 흘금흘금 보다 들킨 나는

  큰 발견이나 한 듯 한마디 했다

  아마 우리는

  애초부터 물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을 거야  

 

  어둠이 내리자

  그의 손을 서너 번 더 잡다 나왔다

  눈앞이 캄캄해 눈물을 훔치고 바삐 걸었다

 

  슬픔을 잘라내는 최고의 도구가 눈물인 것처럼

      -전문(p. 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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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복

 

어머니는 일은 쌀이 한 조리가 다 되어 가면 중솥에 탁 엎어버리며 한마디 하셨다 네 아버지는 재산이 한 말도 아니고 한 되도 아니고 한 조리만 되면 탁 엎어버린다고 한 십 년 피땀 흘려 살만하니 나라를 구한다며 정치판에 뛰어들어 다 까먹고 또 한 십 년 생고생하여 살만하니 몽땅 팔아 도시로 이주하여 코 베이듯 탈탈 털어먹고 종내에는 그것도 모자라 딸랑 오십에 도망치듯 저세상으로 가버렸다고 한동안 잠잠하시다가 내가 고생 고생하여 사업이 좀 될 만할 때 새롭게 문학에 목을 매자 또 조리복을 들먹이셨다 내일을 걱정한 아버지는 가실 때 지장보살을 찾으셨고 지금을 사랑한 어머니는 가실 때 가까운 사람들을 찾으셨다 무식한 어머니가 유식한 아버지를 크게 한 방 먹이고 가셨다 오래 살아 있다는 유세로 나도 어머니께 한 방 먹이신다 한 조리의 성취를 싹 엎어버리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로 또 조리질을 하겠습니까

     -전문(p.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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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거미백합』에서/ 2024. 11. 5. <한국문연> 펴냄

 * 강문출부산 기장 출생, 2011년『시사사』로 등단, 시집『타래가 놀고 있다』『낮은 무게중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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