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82

푸른 바위 외 1편/ 이관묵

푸른 바위 외 1편     이관묵    바위 혼자 익는 저녁 옆에  바위로부터 슬며시  뺨을 얻어  등을 얻어  마음 개 놓고 고쳐 앉는다  바위의 일원으로   귀는 물소리에게 떼주고  눈은 구름에게 퍼주고   내가 바위로 익어  바위가 나로 익어   아무도 모르는 저녁이 왔다     -전문(p. 59)      --------------    서향집    외양간의 누런 소가  자신을 내일 읍내장에 판다는 사립문의 몸 비트는 소릴 듣고  밤새 잠 안 자고 뒤척이는   그런 집을 나는 살았다   새벽녘 오줌 누러 나왔다가 소 얼굴 쓰다듬어 주고,  한참이나 목을 꼬오옥 안아주던   그런 집을 나는 살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중절모 쓴 소 장수 손에 끌려가던 소가  되돌아 허공에 큰 울음 띄우던   그런..

흰 발자국/ 이관묵

흰 발자국      이관묵    눈 쌓인 숲길을 걸었네  한 마리 새 발자국을 따라 걸었네  벌판 둘러메고 한없이 혼자 걸어간   흰 발자국   이별의 간격이었네  그 속도였네  한 곳에 이르러 한참을 머뭇거리다 사라진  되돌아 나간 흔적 없는   하얀 영혼   어디쯤일까  나를 오래 세워놓은 여기는      -전문-   해설> 한 문장: 지금 이곳은 여름, 열기의 감옥. 열파 속에서 읽는 겨울의 시. 눈雪이 점령한 백색 공간에서 여름의 백백白白한 햇빛 아래로 건너온다. 상상의 선을 타고 움직인다. 바다가 '나'의 몸에 상감象嵌한 흰 발자국. 그 물빛과 하늘빛 사이에 낀 구름. 몰려오는 바람과 파도의 발톱을 바라보면서 떠올린 것은 절망. '나'를 맑게 하는 눈물을 본 듯하다. 이별만큼 쉬운 것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