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역 윤석산尹錫山 어둑어둑한 승강대에서 한 사내가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한 십여 분 후면 들어올 서울행 열차, 사내가 말을 걸어온다. "이곳 사람 아니지요. 저는 이곳 사람인디요, 지금은 서울 가 살지요. 고향에 와서 벌초하고 가는 길이지요."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 "지 형이 이곳 역장을 지냈지요." 그리고는 어두워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젊을 때 형이 집에 일이 갑자기 생겨 친구와 야간근무를 바꾸었는데, 그날 그만 폭발사고가 났지 뭐예요. 근무를 바꿔준 형 친구는 그날 죽었어요." 멀찍이 어둠 속 서 있는 그 사내. 이승인 듯 저승인 듯, 멀리 환한 불빛 속 서울행 열차 들어오고 있다. 각자 자신의 표에 찍힌 열차를 타고, 우리 모두 저마다의 시간 속으로 떠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