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6 3

칸나가 흐르는 강/ 이현서

칸나가 흐르는 강      이현서    이 붉은 울음은 어디서 태어나나   두물머리 강가  뜨거운 숨결 사이 흘러나오는 몸의 기억들이  빛의 결가부좌 너머 아득한 수궁水宮에 이르면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빛나던 영혼   아득히 퍼지는 물그림자를 따라 가만히 입술을 달싹이면  꿈의 자장을 밀고  강과 하늘의 경계가 지워지고  불현듯 무색해지는 시간의 궤적  고요의 소용돌이를 따라 슬픔의 지느러미가 돋아나요   저문 꽃잠 속에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던  통증으로 각인된 다정한 속삭임처럼  또 하나의 행성이 자라기 시작해요   내 안에 갇혀 있던 오래된 등고선을 따라  물살을 꽉 움켜쥔 손아귀를 풀면  저만치  찰랑, 수면을 깨뜨리는 흰나비 한 마리  소실점 밖으로 사라지는 한 점 구름     -전문(p. 91..

왜 이러지?/ 송예경

왜 이러지?      송예경    사방에서 몰려드는 바람   블랙홀이 아닌데  흔적도 없이 응축되고  바람에 딸려 들어간 것들은  아우성으로 퍼져 나온다.  불덩이로 솟구치는 중심점은  무색의 분출고  폭풍도, 폭우도, 폭염도 무색하게  모두 타 버려도  한 줌의 재조차 남지 않아  회오리바람처럼  넋이 돌고 돌아 사라지고   다시 사방에서 몰려드는 바람   섬뜩함에 몸서리치고  신음소리에 잠에서 깨니  사방에서 몰려오는 어두움  아직 한밤중인데  어제의 불편했던 마음이  꿈에 반영된 건가   갑자기 온갖 잡음들이  달려들어 귀를 파고드는데  귀를 막으려는 손은 마비되어  귀까지 가는데 수 백 초가 걸리고  잡음들은 그 사이 굉음으로 변하여  맹렬하게 분출한다.   왜 이러지?  악마가 찾아왔나?  아니..

아버지의 등/ 하청호

아버지의 등      하청호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들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전문(p. 37)    --------------------  * 『월간문학』 2024-9월(667)호 중에서  * 하청호/ 1943년 영천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72년 ⟪매일신문⟫ &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1976년 『현대시학』 시 부문 추천, 동시집『빛과 잠』『잡초 뽑기』『무릎학교』『초록은 채워지는 빛깔이네』『말을 헹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