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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삶/ 홍성운

향기로운 삶      홍성훈/ 아동문학가     어느 날 돼지가 젖소를 보고 불평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머리부터 발, 그리고 피부 껍질까지 모두 주며, 머리는 고사상에 올라 사람들의 복도 빌어주는데, 왜 사람들은 너를 더 높이 평가하는지 모르겠어."  돼지의 말에 젖소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너는 죽은 후에 머리부터 발까지 모든 것을 내어 준다지만,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건강하도록 내 몸의 우유를 기꺼이 짜서 내어주고 죽은 후에도 아낌없이 다 주거든."  그렇다. 살아서 더 가지려 더 움켜쥐려 욕심내며 살아온 삶이 죽은 다음에 다 준다고 해야 모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나눌 줄 아는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내 것을 줄..

권두언 2024.11.08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3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3      정숙자   부끄러움은 많고 자랑은 적었습니다. 지금껏 살았다는 건 순ᄀᆞᆫ순ᄀᆞᆫ 먹었다는 것. ‘생각’이라는 동굴에 들어 사유思惟를 캐면서부터···, 플랑크톤처럼 작고 짧은 생이기를 원했지마는 제 몸은 먹이>가 아닌 먹기>였던 것입니다. (1991. 1. 16.)                다시 밤   낮 동안 부풀었던 침전물이  가라앉는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밤  고요, 황홀, 조금은 쓸쓸하기도 ᄒᆞᆫ  이 은은함은   어릴 적 사랑했던 뮤즈의 슬ᄒᆞ   오로지 그뿐, 여위는 가을    -전문(p. 90-91)   ------------- * 『시사사』 2024-가을(119)호/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3/ 정숙자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3      정숙자   부끄러움은 많고 자랑은 적었습니다. 지금껏 살았다는 건 순ᄀᆞᆫ순ᄀᆞᆫ 먹었다는 것. ‘생각’이라는 동굴에 들어 사유思惟를 캐면서부터···, 플랑크톤처럼 작고 짧은 생이기를 원했지마는 제 몸은 먹이>가 아닌 먹기>였던 것입니다. (1991. 1. 16.)                다시 밤   낮 동안 부풀었던 침전물이   가라앉는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밤  고요, 황홀, 조금은 쓸쓸하기도 ᄒᆞᆫ   이 은은함은   어릴 적 사랑했던 뮤즈의 슬ᄒᆞ   오로지 그뿐, 여위는 가을     -전문(p. 90-91)  ------------- * 『시사사』 2024-가을(119)호 에서*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10시 15분/ 김대선

10시 15분      김대선    서쪽에 산다는 바람 하나  제비꽃 씨앗 물고 와  가슴 모퉁이에 슬며시 밀어 놓았다  씨앗을 보지 못한 나는 멈출 줄 모르는 시간만 바라보았다  매일 같은 시각에 바람은  싹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물을 흘려보냈다  아무도 모르게 흘린 흔적  봉오리가 맺힐 때 눈을 비비면서  문득 꽃의 미소를 보고 말았다   흙의 장난에  가슴은 엉망이 되기도 하지만  제비꽃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오늘도  그 시각 서쪽을 향하고  바람은 어김없이  빛과 물을 물고 찾아온다   기다림은 기린의 목이 되어간다     -전문(p. 203)* 추천의 말/ 사물에 침투하는 시력이 마우 섬세하다. 오랜 시간 시적 안테나를 갈고닦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작은 사물에서 보..

규화목/ 고흰별

규화목      고흰별    죽어서도 죽을 수 없는 나무가  눈동자 속에서 직립으로 태어났다   어쩌면 돌의 운명으로  화석이 되기까지  수 천만년 시간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숙성된 몸통으로 유물처럼 마주했다   늪지대를 벗어나  또 다른 나로  꽃도 품을 수 없는 불멸의 나무가 되어  토르소로 서 있다   엽록체로 움직이던  바람의 노래와 사랑의 빛살은  나를 키운 생명의 기운이었다   응고된 그리움이 빠져나간  초록의 시간들을 되새김질했다   지금, 수많은 발걸음이 지나가는 동안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창백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마주하고 있다      -전문(p. 196-197)   * 추천의 말/ 고흰별의 시는 어디에 살든 이방인이 되어버린 현대인의 삶을 담담한 어조로 말해주고 있다. 절절한 ..

차성환_디스토피아의 시간, 그리움의 시간(발췌)/ 나비가 온다 : 백향옥

나비가 온다      백향옥    나를 풀어서 고치를 짓고 들어가 나오지 않는 그를 기다린다  말을 잃고 시력을 잃고 갇혔다  그를 아는 사람은 없다   동풍이 불고 안녕한 오늘, 해를 향해 걷는다  샤콘느를 들어도 슬프지 않은 새벽, 숲은 낮은 바람 소리를 보내준다  사라진 슬픔을 보내준다   비바람 속을 걷는다  비 오는 들판에 머무르면 알게 된다  살아있는 것은 젖지 않는다는 것을   안개 너머엔 무엇인가 있다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강물 속으로 숲이 들어오는 시간  새벽 강가에서 고양이가 기대는 온기로, 그만큼의 기울기로 나비가 온다    초록의 계보에 속한다고 믿으며, 모르는 일을 확신하며 살아간다  아직 사라지지는 않은 길에서 기다릴 수 있다  봄의 열매는 돌처럼 단단하고  나뭇잎은 나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