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6

42.195/ 신선희

42.195 신선희 42.195㎞. 마라톤 풀코스 거리다. 일반사람이 뛸 수 있는 거리일까. 아니 정확히 내가 뛸 수 있는 거리일까가 궁금했다. 5년 전, 우연히 춘마를 알게 되었다. 춘마를 간다는 젊은 친구에게 춘마가 뭐냐하니 춘천마라톤의 줄임말이라 했다. 줄임말도 낯설지만 일반인이 마라톤을 뛴다는 사실이 더 생소했다. 놀란 나에게 그 친구는 곧 있을 동네 마라톤 하나를 툭 던졌다. 한 번 해보라며 심지어 잘할 것 같다며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 옛날 체력장 오래 달리기가 전부인 내가 이 나이에 굳이 뛸 거까지야··· 그러나 궁금했다. 그래서 5㎞만 뛰어보자며 나갔다. 죽는 줄 알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는 꼬이고 도대체 끝은 보이지 않고 겨우 죽기 직전 들어왔다. 나에게 마라톤은 이것으로 충분했고 ..

에세이 한 편 2024.04.22

김관식_영산강 명소의 시비(詩碑)에 대한 제언(발췌)/ 「동다송」中: 초의선사

「동다송東茶頌」 中 초의선사(1786-1866, 80세) 古來聖賢俱愛多(고래성현구애다) 예로부터 성현들은 차를 좋아했으니 茶如君子性無邪(다여군자성무사) 차는 성품이 군자와 같아 삿됨이 없기 때문이다 人間艸茶差嘗盡(인간초다차상진) 부처님이 세상의 풀잎차를 다 맛보고 나서 遠人雪嶺採露芽(원인설령채노아) 멀리 히말라야(=설령)에 들어가 이슬 맺힌 어린 찻잎을 따다가 法製從他受題品(법제종타수제품) 이를 법제하여 차를 만들어 玉壜盛裏十樣錦(옥담성리십양금) 온갖 비단으로 감싸서 옥항아리에 담았다 -「동다송」 부분- ▶영산강 시비詩碑에 대한 제언(발췌)_ 김관식/ 문학평론가 · 시인 초의선사(본명, 장의순)는 전남 무안 출신이며, 조선 후기의 승려로 한국의 다례를 소개할 때 손꼽히는 인물 중의 한 분으로 1828년 ..

고전시가 2024.04.22

김유조_찰나적 동선과 버려지는 물상에서···(발췌)/ 신발論 : 마경덕

中 신발論 마경덕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전문(p. 201) ▶ 찰나적 동선과 버려지는 물상에서 찾은 객관적 상관물_마경덕 시인의 시를 읽으며(발췌)_ 김유조/ 소설가 마경덕 시인은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신발論」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년도 더 전에 나온 ..

물이 깊다/ 지연

물이 깊다 - 소룡골 시편 지연 * -니 에미는 땡볕에 대수리 잡으로 가서 그냥 칵 뒈져버렸는갑다 입맛 잃은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물속을 헤매고 * 양재기에 염색약을 푼 어머니 몇 가닥 없는 아버지 머리카락을 칫솔로 곱게 빗어 내린다 앉은뱅이 의자에 아버지가 새침하다 * 빵빠레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다 주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임자 그만 일혀 * 아버지 돌아가시고 평생 함께하던 스탱 밥그릇이 없어졌다고 어머니는 어깨를 들썩였다 * 경로당에 쓰르라미로 달려가는 어머니 -전문(p. 196) ------------- * 『미래시학』 2024-봄(48)호 에서 * 지연/ 2013년『시산맥』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2016년 《무등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건너와 빈칸으로』『내..

일반 병동의 저녁/ 정지윤

일반 병동의 저녁 정지윤 똑, 똑, 링거 방울 떨어진다 날카로운 소리들이 나를 찌른다 침대 밖으로 모르핀 같은 구름이 창을 가득 채운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맨발로 달려가는 햇살의 끝 몸을 뒤틀 때 묻어나는 아, 통증 없는 잠 매일 싸우다 흐릿해지는 나는 거울 뒤 다 보이는 버편의 환한 저녁을 왜곡한다 사라지는 것들에 전염된 얼굴아, 울지 마라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한 올 -전문(p. 188-189) ------------- * 『미래시학』 2024-봄(48)호 에서 * 정지윤/ 2015년 《경상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 2016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 2014년 《창비 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 시집『나는 뉴스보다 더 편파적이다』, 시조집『참치캔의 의족』『투명한 바리케이드』, 동시집『어..

브룩샤 아사나/ 정선희

브룩샤 아사나 정선희 그건 무의식 중에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옆에서 나는 소리인데 왜 내 가슴에 금이 가는 걸까 아야, 아야 소리를 내면서 견딜 수 있는 아픔이 있다 몸을 통해 마음의 통증이 빠져나오는 수가 있다 브룩샤 아사나 그녀가 한쪽 다리로 서서 두 손을 모아 머리 위로 쭉 폈을 때 촛불이 휘청, 나는 눈을 부릅뜬 채 거울 모서리에 있는 한 점을 노려보았다 생각이 끼어들면 점이 보이지 않아 점은 사라졌다가 두 개 세 개가 되었다 거울이 수면처럼 일그러지는 그때 발등에 떨어지는 촛농을 보았다 앗, 뜨거! 그녀 대신 내가 넘어졌다 -전문(p. 180) ------------- * 『미래시학』 2024-봄(48)호 에서 * 정선희/ 2012년 『문학과의식』 시 부문 등단 & 2013년⟪강원일보⟫ 신춘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