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42.195/ 신선희

검지 정숙자 2024. 4. 22. 17:27

<에세이 한 편>

 

    42.195

 

    신선희

 

 

  42.195㎞. 마라톤 풀코스 거리다. 일반사람이 뛸 수 있는 거리일까. 아니 정확히 내가 뛸 수 있는 거리일까가 궁금했다.

 

  5년 전, 우연히 춘마를 알게 되었다.

  춘마를 간다는 젊은 친구에게 춘마가 뭐냐하니 춘천마라톤의 줄임말이라 했다. 줄임말도 낯설지만 일반인이 마라톤을 뛴다는 사실이 더 생소했다.

  놀란 나에게 그 친구는 곧 있을 동네 마라톤 하나를 툭 던졌다.

  한 번 해보라며 심지어 잘할 것 같다며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 옛날 체력장 오래 달리기가 전부인 내가 이 나이에 굳이 뛸 거까지야···

  그러나 궁금했다.

  그래서 5㎞만 뛰어보자며 나갔다. 죽는 줄 알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는 꼬이고 도대체 끝은 보이지 않고 겨우 죽기 직전 들어왔다.

  나에게 마라톤은 이것으로 충분했고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난 다음 해, 가을 춘마 10㎞에 나갔다. 10㎞부터 공식기록이 가능하다 하지 않는가. 그것이 이유였다.

  5㎞처럼 뛰었다간 죽을 거 같아 스스로 코치가 되고 선수가 되어 연습했다.

  그리하여 얻게 된 나의 첫 10㎞ 공식기록은 1시간 7분. 1시간 이내로 들어오지 못함이 아쉬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며칠 후 대회 공식 기록증과 함께 참가한 사람들의 기록과 나이가 기재된 신문이 왔다. 무심히 보다보니 일흔이 넘어도 여든이 넘어도 심지어 아흔에도 뛰는 분이 계셨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런 나이에도 마라톤을 한다고(?) 경이로웠다. 그렇다면 내 나이가 늦은 건 아니네. 앞으로 10년은 뛸 수도 있다는··· 어쩜 풀코스도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은 끝없이 달렸다.

  그러나 바로 발생한 코로나 사태는 일상에서 마라톤을 잊게 했다.

 

  3여 년의 시간이 지나 마스크 없는 생활에 익숙해질 지난 가을, 춘마가 생각났다. 하프코스 이상에만 주어지는 의암호 단풍길을 달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엔 10㎞와 풀코스만 있다한다. 난감했다.

  하프 한 번 뛰어보지 않았는데 바로 풀코스는 무리다.

  고민 끝에 풀코스를 신청하고 하프 이상 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몇 년 전 10㎞를 준비했던 동네 산책로에 다시 섰다.

  13㎞, 17㎞, 21㎞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갔지만 매번 쉽지 않은 거리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23㎞를 최대 연습 거리로 마무리하고, 10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 일찍 춘천으로 향했다.

 

  2만 5천 여명이 마라톤을 위해 모였다. 풀코스 공식기록이 없는 나는 마지막조에 배정되어 42.195㎞ 출발선에 었다. 마치 어릴 적 운동회날 들뜬 마음으로 운동장에 서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출발신호와 함께 거대한 무리 속 한 점이 되어 뛰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고 급수대를 지나 다시 언덕을 오르고 다리를 건너니 의암 호수길이 나왔다.

  그러나 단풍보다는 함께 뛰는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젊은 사람보다는 40대, 50대, 60대 이상의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다.

  앞서기도 뒤서기도 하며 각자의 속도와 모양새로 뛰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삶의 모양이 그려졌다. 물어보고 싶었다. 왜 뛰나요?

  터널을 지나며 지르는 함성은 서로에게 울림이 되어 되돌아왔다.

  나도 질러보았다. 터널을 지날 때 하는 나름의 의식인가 보다. 소리를 지르고 나니 낯선 사람들과 조금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제법 가파른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길가에 대자로 누워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버 페이스를 한 건가?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온 건가?

  숨은 쉬고 있겠지. 대회 본부에서 곧 오겠지. 갖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나쳐 뛸 수밖에 없었다.

  한 무리 젊은 친구들 옆을 지나니 그만 뛰자와 계속 뛰자는 실갱이가 한창이었다. 한참을 달리는 중 코스를 벗어나 긴 줄을 서고 있는 마라토너들이 보였다.

  궁금하여 자세히 보니 화장실 줄이 아닌가. 이해는 가나 화장실 가느라 뛰는 걸 멈춘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라 놀랍고 신기했다.

  이 속에 들어와야만 만날 수 있는 낯선 풍경들이 재밌다. 날씨는 좋았다.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쨍했다. 늦가을 춘천 어느 마을일까. 배추밭, 무밭을 지나고 파란 하늘도 올려다보고 스쳐가는 산들도 슬쩍슬쩍 보며 제법 잘 뛰고 있는 나를 보았다.

  혼자 연습하며 터득한 것이 있다면 호흡이 딸리지 않는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절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명심하며 뛰다 보니 하프 지점에 닿았다. 커다란 플라스틱 손바닥을 딱딱 두드리며 응원해 주는 젊은 친구들이 고마웠다. 하프 지점에서 제공되는 초코파이를 은근 기대했지만 퍽퍽하여 잘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베어문 한 입만 물과 함께 넘기고 말았다.

  자기한테 맞는 간식을 챙기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하프 이상은 뛰었으나 어디에서 멈출지를 정하지 않은 채 계속 뛰어보기로 했다.

  출발 때의 쌀쌀한 기온은 정오의 따가운 햇볕에 한여름 같았다.

  여긴 어딜까. 제법 긴 다리 위를 달리는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몸은 뛰고 있는데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아 계속 제자리 뜀을 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지루했고 한계가 오는 걸 느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 위에서 뛰기를 멈추었다.

  아예 앉아서 쉬는 사람, 셀카에 열중인 사람, 자신의 카메라로 중계를 하는 사람 등등 마치 여기까지만 뛰기로 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에게 뛰는 건 그닥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제자리 뜀 같은 나의 고군분투와 그들의 여유가 대비되며 웃음이 나왔다.

  서로의 눈에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 나름 위기였다.

  긴 지루함에 멈출 뻔했다. 중간중간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깨나가는 성취감이 있었다.

  지루했던 긴 다리를 지나 춘천댐을 건너 돌아서니 30㎞가 눈에 들어왔다.

  그 표지판을 본 순간 이제는 절대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내 발이 뛰기를 거부할지라도 기어서라도 가야 할 거 같았다.

  언제 또 이 거리를 뛸 수 있겠는가.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라 하지 않는가.

  처음 뛰어본 이 거리를 살리고 싶었다. 이 순간을 평생 후회할 시간으로 만들지 말자 등등 머릿속은 이미 완주를 결정하고 내 몸을 살살 달랬다.

  그러나 위기는 계속 왔다. 줄어드는 거리를 체크하고 격려하며 뛰었지만 42.195㎞는 꽤 긴 거리였다. 마지막 다리를 건너면서 많은 사람들이 걸었다.

  난 속도를 줄여도 걷지 않았다. 걷는 순간 뛰지를 못할 거 같았다.

  다리 끝을 도니 40㎞의 표지판이 보였다.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러나 그 2㎞는 심적으로 가장 긴 2㎞였다.

  보이지 않을 거 같은 피니쉬 라인이 저 멀리서 보였다.

  5시간 11분의 긴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기뻤다.

  남은 힘을 다해 피니쉬 라인을 꽉 밟았다. 해냈구나. 뛰던 몸을 세우는 순간, 짧지만 뜨거운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감사했다.

  마라톤은 끝없이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하며 뛰는 경기다.

  몸 상태를 체크하고 보살피고 달래며 끝까지 뛸 수 있도록 자기를 이끌어가는 1인 스포츠다.

  '자신과의 여행'이다. 지루할 수도, 외로울 수도, 언제든 멈춰도 되는 유혹도 있지만 그 모든 순간순간을 선택하며 가야 한다. 어찌보면 짧은 인생 하나를 살아 낸 기분이다.

  '시작'과 함께 속도의 강약을 조절하며 '마침'을 향해가는 제법 매력적인 경기다.

  풀코스의 공식기록이 5시간 이내라 한다.

  다시 도전할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몸과 정신이 허락하는 한 이 '홀로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자신만의 속도로 한 번쯤 42.195㎞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p. 268-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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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시학』 2024-봄(48)호 <수필의 향연>에서

   * 신선희/ 2023년『미래시학』으로 등단, 현) 상일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