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5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47/ 정숙자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47 정숙자 그믐달에 줄 매어 공후로 탈까? 화살촉에 꽃 매겨 서편에 쏠까? 마음 없는 마음은 천지도 한 뼘 오르ᄅᆞᆨ내리ᄅᆞᆨ 먼먼 그네를 타네 (1990.10. 4.) 오래전 저 뒤뜰이 서리 낀 하늘이었군요 그 밤은 분명 협곡이었는데, 어떻게 빠져나왔을까요?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뿐입니다. 협곡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란 슬퍼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말고… 다만 수직/수평으로 한 올 한 올 ᄍᆞ보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가느다란 실일지라도 진실/진심을 부어보는 거, 그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협곡의 삶,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니체의… 영원-회귀, 캄캄히 진화 중입니다 -전문(p. 66) ------------- * 『미래시학』 2024-봄(48..

종이시계/ 이서란

종이시계 이서란 꽃이 핀 자리에 시간이 맺혔다 어떤 시간은 히말라야산 핑크 소금 빛 같은 노을로 피기도 한다 피는 것들은 쉽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켜보는 눈동자가 촉촉하기 때문이리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피는 시간은 시계에 의존하는 명사名詞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끊임없이 초침의 페달을 밟고 밟아야 닿는 기억 가을이 오면 흰꽃나도샤프란은 선회하는 날개로 온다 젊은 날의 격동과 혼돈 삶의 애환과 살아 숨 쉬는 욕망이 싱싱한 꽃잎으로 유영하는 시간을 정복해야 한다 시간의 집 앞에서 날갯짓으로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눌러지지 않는 돌아가는 길을 어디에다 두고 온 것인지 시간이 핀 자리에는 색이 바랜 꽃잎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전문(p. 84-85) --------------- * 군산시인포럼 제3집 『시, 바다..

미당 묘소에서/ 윤명규

미당 묘소에서 윤명규 초입의 말라비틀어진 고샅길 가파르게 구불텅거리고 시퍼렇게 날을 세운 억새들만 봉분 위로 쟁쟁했다 고개 숙인 엉겅퀴들 주홍 글씨로 속절없이 피어나 여기저기 숙명처럼 널브러져 있는가 따뤄 올린 술잔 속에 그의 아린 춤 그림자가 덩실덩실 흐느끼고 있다 첩첩으로 쌓인 세월의 더께 독침 세운 저 엉겅퀴는 언제 자기꽃 피워낼까 장수강 물바람이 상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동천冬天을 읊조린다 -전문(p. 79) --------------- * 군산시인포럼 제3집 『시, 바다와 썸 타다』 에서/ 2023. 12. 26. 펴냄 * 윤명규/ 2020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허물의 온기』

춘몽인화(春夢印畵) 외 1편/ 송뽈깡

춘몽인화春夢印畵 외 1편 송뽈깡 또 번지는 아지랑이. 벌리는 입술이 떨리네. 추억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 잔잔한 불꽃이네. 그 미소 사진 한 컷 접지 않는 날개에 걸어두리라. 춘풍이란 셔터 누르며 벌이 윙윙거리면 용용한 봉오리 안에서 은근히 곰곰 웅크려대기만 하던 목련꽃잎이 밖으로 조심스레 너울거리네. 마주친 눈빛 위해 더욱이 부드럽게 펄럭여대는 이 아지랑이는 얇은 플레어스커트 자락의 우아한 흐느적거림이네. 심연이 떨리네. 지상의 모든 설렘이 그리 재발하고 시간은 더불어 노 젓게 되네. 흐드러지게 유희할 순筍 붕붕거려대는 15개 입춘으로부터 던져진 소년이여. 끈적하게 팔짱 껴대는 꽃잎 미소 25개 봄으로 진수한 나룻배에 싣고 소녀가 흐르네. 만연하게 춘풍이 부네. 더더욱 두근대는 이 에스프레시보 그리움은 ..

그 새는 새장이 구워준 빵으로 일생을 산다/ 송뽈깡

그 새는 새장이 구워준 빵으로 일생을 산다 송뽈깡 여러모로 날개여, 거뜬히 날아다닐 자작곡 걸쳤는가. 밖으로 나도는 음악이 새장을 소환하자 비상 길쌈해대는 새소리가 솟는다. 이때 길이 지휘해줄 터. 깃털 선언한 음표들이 흐른다. 운명이여, 바람으로부터 태어난 노래와 놀아날 일이다. 캄캄할수록 더 환해지는 법 그 길 쫓는 눈빛에서 발화해 솟은 등불 태우며 저를 가둔 새장 팔아, 활활 날개 사 먹는 새 말이다. -전문- 에필로그(저자) 상처가 큼큼거리고 눈물이 뚜벅거리는 이유 나 내 운명을 외상해버렸듯 이 시집은 해설을 달지 않는다. 신이 세상을 허한 것같이 나는 내가 시 쓰는 것 태초에 허락했기 때문이다. 냉큼 사로잡힐 줄 아는 느낌의 주인들이여. 감히 내 상처가 감동의 시간을 선포한다. 그로 말미암아 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