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유조_찰나적 동선과 버려지는 물상에서···(발췌)/ 신발論 : 마경덕

검지 정숙자 2024. 4. 22. 02:34

<2024, 제2회 미래시학 운문부문 문학대상 수상작> 中

 

    신발

 

    마경덕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전문(p. 201)   

 

 

  ▶ 찰나적 동선과 버려지는 물상에서 찾은 객관적 상관물_마경덕 시인의 시를 읽으며(발췌)_ 김유조/ 소설가

  마경덕 시인은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신발論」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년도 더 전에 나온 이 시인의 절창은 지금도 많은 이들로부터 청청하게 읊조려지고 활자로 수시 재현되며 여러 시론詩論의 대상의 되어 의미를 재창출하고 의식을 경각시킨다. 필자도 개인적 선호를 밝히며 일기체로 시작된 전문을 재록, 음미해 본다.

 

  시를 다시 읽으며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떠올린다. 정확하게는 주 탑이 두 개인 그 광걸한 현수교가 아니라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의 신발을 노천에 전시하고 있던 애틋한 한 마당이 떠오른 것이다.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당시 1558켤레라던 기억도 새롭다. '과적했던 선주'로서의 자신을 신발에서 빼어내고 두 개의 주 탑 사이에서 먼 바다로 떠나간 사람들이 즉자적 존재(an sich sehen)라고 한다면 「신발論」의 주체인 시인은 일기체라는 주관적 구도에도 불구하고 서술의 객관성이라는 시각을 구현하여 대자적 존재(fur sich sehen), 즉 상대적 입장에서 버린 신발들을 사유, 반추한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 위에서 타자가 된 신발들의 모습이나 「신발論」의 시인이 음유한 신발들은 세상의 형상과 본질의 파악에서 동질감을 구현하며 가슴 저미는 이중인화의 한 영상을 나에게 내민다. (p. 시 201/ 론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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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학』 2024-봄(48)호 <제2회 미래시학 운문부문 문학대상 수상작심사평>에서 

*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신발論『그녀의 외로움은 B형』『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 김유조 / 2005년『문학마을』로 소설 부문 등단, 장편소설『빈포 사람들』, 시집『여행자의 잠언』, 평론집『우리 시대의 성과 문학과 세대』외 학술서 다수, 수필집『열두달 풍경』, 건국대 명예교수(부총장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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