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작품론 29

특집_2022. 제18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 시와 시론/ 정숙자

신작시 1편)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6 정숙자 귀뚜라미야, 너는 날개로 울고 날개로 노래도 부른다지? 네 날개는 공후箜篌보다도 아름답구나. 친구네 풀밭 찾아갈 때도 날개가 널 데려다주잖니! 날 수만 있어도 아름다운데 피리까지 들어있다니! 이 가을에 네가 없다면 얼마나 ᄏᆞᆷᄏᆞᆷ했을까. 내 삼경, 네 곁에서 검정을 지우는구나. (1990. 8. 18.) 귀뚜리야, 귀뚜ᄅᆞ미야 난 어제 ‘눈물점의 협착’ 수술을 받았단다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할 때 참아버릇한 탓으로 막혀버린 게 아닐까 수술받는 내내 뒤늦은 강둑 흔들렸단다 한 계절만이라도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너처럼 그래야 했을 것을 서른 ᄆᆞ흔 쉰을 넘어도 슬픔 앞에선 한낱 아이일 뿐이었는데, -전문- 시론 1편) 나의 독서 패턴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

내가 읽은 미당 시「귀촉도」를 중심으로(전문)/ 정숙자

| 내가 읽은 미당 시 | 歸 蜀 途 未堂 徐廷柱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三萬里. 흰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오진 못하는 巴蜀 三萬里. 신이나 삼어줄ㅅ걸 슲은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날로 이냥 베혀서 부즐없는 이머리털 엮어 드릴ㅅ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구비 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가락 눈이 감겨서 제피에 취한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 육날메투리는, 신중에서는 으뜸인 메투리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신발이였느니라. 귀촉도 는, 행용 우리들이 두견이라고도 하고 솟작새라고도 하고 접동새라고도하고 子規라고도 하는 새 가, 귀촉도···귀촉도··· 그런 發音으로서 우는 것..

내 시집 속의 가을 시「액땜」/ 정숙자

액땜 정숙자 죽은 자는 울지 못한다 아니다 죽은 자는 울지 않는다 실제로는 (이 마당에서) 죽은 자는 산 자이기 때문이다. 좀 더 푸른빛 내뿜어야 할 벙어리이기 때문이다. 몇 곱은 더 실다운 삶을 울어야 할 피리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목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접목할 수도 분지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언어는 석상의 눈물에 불과하지만 석상의 눈물은 드넓은 깃발 흔드는 팔과 그 깃대 아래 모인 발들의 쾌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뛸 수도 없는-죽은 자들 날 수도 없는-죽은 자들 길 수도 없는-죽은 자들 전철 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빈 병, 아무래도 저 병은 무진장 신났나 보다. 바다 하늘 들판이 꼭 바다 하늘 들판이어야 할 까닭이 뭐냐 마구 구른다. 킬킬킬킬킬 깨진 얼굴 비친다. 난생처음 자유..

정숙자 시집『공검 & 굴원』/ 자작시집 엿보기

삶의 투영과 기호의 수용 -『공검 & 굴원』(미네르바, 2022) 정숙자 시집 출간일이 2022년 5월 16일인데 오늘이 7월 17일이니 꼭 두 달이 됐다. 아직도 시집 발송 작업이 끝나지 않았지만, 몇 군데의 신문과 카페 블로그 방송 잡지 등에 소개되어, 그 필진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는 중이다. 그에 따라 ‘자작시집 엿보기’가 자연스레 객관적 입장으로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많이 읽히는 바로는 역시 표제에 나타난 「공검」과 「굴원」이고, 짧게 압축한 「극지 行」과 「푸름 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선 「공검」은 다음과 같다. 아참, ‘공검空劒’은 “허虛를 찌르는 칼”이라는 뜻으로 저자의 신조어임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눈, 그..

『시와산문』2022-여름호/ 시인특집② : 정숙자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12 정숙자 당신의 아기인 줄도 모르고 저는 그들을 잡으며 놀았었군요. 투명한 날개와 가느다ᄅᆞᆫ 몇 마디의 몸을 미루어, 그이도 천사인 줄을 어느 날 문득 깨우쳤습니다. (1990.7.16.) _ 저 역시 그들, 잠자리만큼이나 허공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_ 저 얘기를 들려줬을 때 조카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모, 잠자리한테는 날개를 모아 쥐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다 부서졌을 거예요. 잠자리 날개는 수평으로만 펼치도록 태어난 거잖아요? 그런데 완전히 뒤로 세워서 한 잎처럼 모아쥐었다는 건 참으로 가혹한 일이었어요. 그런데도 놓아주면 사뿐히 날아갔지요. 너무 무서워서, 너무나도 아팠지만 있는 힘을 다해 날아갔던 거예요. 그 후 그가 얼마나 더 살았을지, 어디서 어떻게 되었을지··..

정숙자_since 1970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시/ 파리의 자살가게 : 김상미

파리의 자살가게* 김상미 죽고 싶은데 파리까지 가야 하나요? 이곳엔 왜 자살 가게가 하나도 없나요? 죽지 못해 산다는 건 너무 가혹해요 성미 급한 사람들은 오래전에 벌써 다 죽었는데 찬송가 493장을 펼치고도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보이지 않아 비탄의 금잔화 한 다발을 사들고 오늘도 꾸역꾸역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그들에게 파리행 티켓은 너무 비싸고 아득해요 죽음이 간절해질수록 삶은 더욱 쓸쓸해지고 죽음의 형식 또한 마지막 잎새처럼 갈수록 초라해져요 이곳에도 자살 가게를 만들어줘요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내 가슴이 울고 있어요 죽음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 건 마지못해 산다는 것 삶이라 불리는 그 수수께끼를 일찌감치 푼 사람들도 피가 나도록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 이 지상에 무덤 하나 달랑 남겨놓고 떠나버렸는데 이..

정숙자_수평적 진화의 값진 삶 : 최금녀

수평적 진화의 값진 삶 - 최금녀 시인론 정숙자 2020년의 4월은 참으로 혹독한 봄이 아니었나 싶다. 꽃들은 시름없이 피어 저마다 자색姿色을 다투었지만, ‘COVID-19’로 인해 전 국민의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발이 묶였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었던 ‘살처분’이라는 말이 식물계에까지 적용되어버린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여파로 주말이면 동네 산책로마저 차단되었으며, 제주도에서는 그 눈부신 유채꽃밭을 트랙터로 밀어버리는 광경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 지역이 어디 한두 곳이었겠는가. 필자 역시 사회 전반에 깔린 그 우울감과 공황 속에서 무거운 시간을 짓누르고 있던 어느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중 ‘시인론’에 대한 원고청탁 건이었다. 평소 친정 언니 같은 인품의 최금녀 시인을 논한..

정숙자_넥스트(next)에서 엑시트(exit)까지/ 주동자들 외 4편 : 진혜진

주동자들 외 4편 진혜진 갑시다 가서 설득합시다 그는 동원되지 않고 문이 동원됩니다 문에 끼인 얼굴이 한 사람에서 두 사람 세 사람이 됩니다 이해 불가한 손잡이입니다 문 안에는 첫 케이크가 있고 손뼉을 쳐줄 손바닥은 없습니다 전화의 수신자가 없고, 그의 비밀은 번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나오지 않는 발끝이 라일락 향기입니다 바깥의 설득과 반대편의 상실을 거로에게 내밉니다 첫 웃음을 후회와 교환합니다 한 번에 징후가 탄생합니다 배후가 누구인지 누구의 염탐인지 문은 헷갈립니다 바람의 거스러미가 문턱에 걸립니다 갑시다 가서 생일이 됩시다 구호만 있고 대답이 없는 극장을 색출합시다 그가 다시 문으로 나올 때까지 기억을 모두 봉쇄합시다 우린 우리가 아닐 때 비로소, 주동자가 됩시다 -전문- -------------..

정숙자_ 클릭, 버튼, 터치의 시대/ 금붕어의 복수 외 4편 : 정지윤

금붕어의 복수 외 4편 정지윤 수족관의 밤은 푸르다 잠은 어디 있나 금붕어 배꼽에 기다란 잠의 똥이 달려 있다 비늘이 다 바랜 금붕어 감기지 않는 눈이 잠을 맛있게 뜯어 먹고 있다 업데이트된 새벽은 1초뿐 충혈된 화면엔 싱싱한 알들이 자꾸 태어난다 허기진 지도 위의 길들은 거품일까 낚는 줄 알았지, 처음엔 편의점에서 24시간 카드를 끍는다 내 모니터와 나는 서로를 보여줄 때만 믿는다 물속에서 감기지 않는 눈 잠이 둥둥 떠다니는 작은 어항 -전문- ---------------------- 슈뢰딩거의 치킨집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요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 선택의 관절은 다 닳았어요 누군가 대신 선택해 주는 결정은 얼마나 가벼운지 책임이 없는 사랑을 즐겨요 프라이드 치킨, 슈뢰딩거의 양념 엄마는 신발이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