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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아델라이드-지예트 뒤프레느 : 정과리 옮김

사랑이란 연가 아델라이드-지예트 뒤프레느와(Adelaide-Gillette Dufrennoy 1765-1825, 60) : 정과리 譯 매일매일을 바람으로 지내는 것, 뭘 욕망하는지 뚜렷이 알지도 못한 채로. 동시에 웃고 우는 것, 왜 우는지,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언제든지 떼쓸 수 있다는 걸 아침에는 두려워하고 저녁에는 소망하는 것. 그이가 환심을 구할 때는 무서워하고 그이가 윽박지를 때는 저게 연심이려니 하는 것. 제 고민을 보듬으면서도 지겨워하는 것. 온갖 얽매인 것들을 공포에 질리면서도 즐거워하는 것. 심각한 문제들을 가볍게 제끼면서 사소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위장했다가 솔직했다가 하는 것. 소심하고, 거만하고, 멍청하고, 빈정대고. 모든 걸 다 바치면서도 아직도 바칠 게 남았는지 떨면..

외국시 2024.04.01

노대원_어린-어른, 혹은 성숙한···(발췌)/ 시의 신이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쓴 시 : 이우성▼

시의 신이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쓴 시▼ 이우성 너는 이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써서도 안 될 것이며 쓴다고 하더라도 그럴듯한 문장은 결코 만들지 못할 것이다 시의 신이 말했다 꿈에서 나는 울었다 시인이니까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까 나는 너를 떠날 것이다 그 순간 화가 났다 그동안 내 옆에 있었는데 시가 이 모양이었어? 가라,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있으나 마나 시의 신 잠에서 깼다 아치피 시 써서 성공하기는 글렀어 혼잣말하며 부러운 시인들 몇 명을 떠올렸다 시를 쓰려고 소파에 앉았는데 정말 아무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 그런 시마저 이제 무리인가 어이가 없네 일어나서 청소를 했다 삶을 지우려고 괜히 막 말했어 그래도 신인데 나는 성공한 시를 쓴 적이 없다 눈물이 났다 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

수메르 외 1편/ 김건희

수메르 외 1편 김건희 앞섶 단 추 하나 뚝 떨어져 신전 계단 아래로 굴러간다 그의 과거를 알고 싶거든 점토판 쐐기 문자를 조금씩 더듬어 봐 한곳에 머물기를 거부한 단추, 이해하는 순간 진흙에 꽂힌 문자는 표창이 되어 네 가슴에 꽂히게 될지도 몰라 신전에 갖다 바친 양 일곱 마리 움푹해진 눈동자로 뛰어나올지도 몰라 진흙 바닥을 막대기로 긁다 죽은 술사가 네 머리에 독약을 뿌리더라도 벌떡 일어나지 마 기도의 방으로 들어가 함부로 신들을 불러내지는 마 캄캄해지는 눈앞의 순간이 성벽처럼 가로막을 떄 당당히 일어나 휘파람을 불어 봐 -전문(p. 32-33) ------------------------ 상수리 경전 저무는 숲에 갔다가 탁! 탁! 도토리에게 얻어맞았다 나를 치고 동화사 돌계단을 굴러 내려간다 놀라 ..

오렌지 지구본/ 김건희

오렌지 지구본 김건희 남극과 북극을 빙빙 돌린다 자유로운 영혼일수록 침이 고이고 껍질은 오래전부터 탈출을 꿈꾸었을 것 귀퉁이 쪼그라든 오렌지 살빛 다른 이들에게 한 쪽씩 나누어졌을 것 꽃을 꺾은 자에게 손을 모은 바라나시*가 전설보다 더 오래 산다 해도 어찌 오렌지 역사만큼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끝이 보이지 않던 갈림길에서 달려 나온 바퀴는 바빌론에서 풀려나온 눈빛이다 눈 감고 입을 열어 과즙 한 입 삼키면 쓴맛 단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껍질 잃은 알맹이가 초라하다지만 어느 낯선 접시별에 툭 던져진다면 오렌지 아닌 다른 이름이어도 좋다 내일은 어디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전문- * 인도 북부의 도시 해설> 한 문장: 사회적인 인식을 가진 시인은 오렌지라는 작고 단순한 사물에서 큰 의미를 끄집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