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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지_기르는 마음(발췌)/ 당근밭 걷기 : 안희연

당근밭 걷기 안희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모두 나의 땅이라 했다. 이렇게 큰 땅은 가져본 적이 없어서. 나는 눈을 감았다 뜬다. 있다. 무엇을 심어볼까. 그게 뭐든 무해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눈을 감았다 뜨면, 무언가 자라기 시작하고. 나는 기르는 사람이 된다. 주황은 난색暖色이에요. 약동과 활력을 주는 색. 그는 내가 머잖아 당근을 수확할 거라 했다. 나는 내가 바라온 것이 당근이었는지 생각하느라 잠시 휘청했으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한 쏟아짐이라 믿었다. 하지만 당근은 보고 있었네. 나의 눈빛. 번뜩이며 나를 가르고 간 것. 나의 당근들, 흙을 파고 두더지를 들였다. 눈을 가졌다. 자루를 나눠드릴게요. 원하는 만큼 담아가셔도 좋아요. 혼자 먹기 아까운 당근들, 수확의 기쁨을 누리며 떠나보낸 ..

임승빈_별에 이르는 길(발췌)/ 저녁에 : 김광섭

저녁에 김광섭(1905-1977, 72세)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문- ▶별에 이르는 길(발췌)_ 임승빈/ 시인 이 시는 1969년 11월에 발행된 시집 『성북동 비둘기』에 실려 있다. 당시에 나는 이 시집을 사고도, 이 시는 읽을 수가 없었다. 목차에 보면 이 시는 83쪽에 있어야 하는데, 내 시집은 77쪽부터 96쪽까지가 없었다. 파본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군 복무 중이던 1976년 초봄에 외출을 나갔다가 전주에 있는 에서 1975년 에서 나온 김광섭 시선집 『겨울날』을 샀고, 거기에서 비로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