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5 4

가불릭신자/ 유안진

가불릭신자     유안진    엿들은 게 아니라 저절로 들렸다 찻집에서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세평世評이어설까  "정치인은 다 가불릭신자"라는 말도   가불릭?  몇 번 중얼거리다가 감탄했다  기독교 불교 가톨릭 모두의 지향은  동일同一하다는 말일 듯  놀라운 통찰 발상 창의력 아닌가 하고  뉴스마다 가불릭신자들부터 시작된다  볼 때마다 감탄한다     -전문(p. 57)  -------------------  * 『시로여는세상』 2024-봄(89호)호 시> 에서  * 유안진/ 196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달하』『다보탑을 줍다』『터무니』등, 산문집『지란지교를 꿈꾸며』등

내 마음은 오수요/ 이범근

내 마음은 오수요      이범근    한밤중 호수에 던진 돌 다음 날에서야 풍덩, 소리가 났다 아무도 따지 않아 달다 못해 썩은 과일이 떨어지고 호숫가 낚시꾼들이 먹고 버린 육개장 컵라면의 멀건 기름이 표정처럼 뜬다   문득 어두운 사람은 시체에 돌을 묶어 버린다 호수는 그걸 물 밖으로 뱉어낼 수 없고 수면은 그때마다 출렁인다 잔잔하다 호수는 스스로 출렁이는 법을 모른다 건너편 물가엔 신사용 양말만 신은 남녀가 서로를 서로에게 넣었다 뺀다 소스라친 우리에겐 수면이 없다   수심水深에 그런 치욕과 공포와 아름다움을 다 가라앉혀 놓고   호수엔 너른 둘레가 있다 한없이 원에 가까운 물가 피었다 죽는 식물과 벌레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검은 깊이를 두려워하고 신성시하고 호수가 갑자기 말라버릴 재앙에 대해서 말..

어느 양육/ 이영광

어느 양육     이영광    어려선 늙고 병든 죽음들을 키웠다  사라져서 더는 나타나지 않던 얼굴들  먼 역사를 배우듯 관광하듯  무심하고 갸우뚱한 날들이었다  자라선, 사납고 굳센 죽음들을 키웠다  높은 말을 타고 큰 칼을 치켜든 어둠이  꿈속까지 뒤쫓아왔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사로잡히곤 했다 무시로 다시 살아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잃고  돌아보면, 죽음 양육 어둠 양육을 잊은  초롱초롱한 세월이 떠올랐다 사실은 그 환한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때 생은 홀연  선잠처럼 아릿하고 또 달콤하게 가물거린다  어둠의 입 속에서 어둠을 찾는 나날이거나  잠깐의 파문과 한량없는 적요, 또는 침묵  그러나 고운 신기루 길을 막는 안개 속에  흘러가는 그때 그 시간은 또 너무 짧아서  ..

밤에/ 심선자

밤에     심선자    밤에 내린 눈을 옥상은 이해한다는 것인가  주저앉아 있다   어디서 가둬 놓은 바람이 한꺼번에 풀려났는지 흰 물감을 뒤집어쓰고 죽을 쒀 놓은 세상   눈동자에 떨어진 눈송이 눈이 얼굴에서 녹는다 다가와서 자세히 보면 흰 살이 죽죽 찢어져 날리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볼수록 폭탄 같은데,   엄마는 떨어진 인형의 눈알을 꿰매고 있다 잠도 자지 않고서, 인형을 다 만들면 엄마, 어디 가지 마세요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잖아요   푹푹한 솜이불 위 먼지가 폴폴, 우리가 뛰어놀기 좋은 곳, 우리의 꿈은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이 광경은 무덤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 추웠는데 따뜻하다 말하면 거짓인 것인가  걸레가 얼어붙은 밤이었기에 죽지 말자며 서로의 얼굴에 입김을 불어넣었지   흩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