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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묘지에서(전문)/ 김미옥

그들의 묘지에서      김미옥/ 문예비평가    작년 만주  여행길에 윤동주의 묘지를 찾는 일정이 있었다. 그난 나는 무슨 일로 일행을 놓치고 혼자 걸어야 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눈보라로 길을 잃어버렸다. 바람이 울음소리를 냈는데 장년의 남자들이 내는 곡소리였다. 다행히 나를 찾으러 온 일행이 있어 나는 무사히 그의 묘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찾았던 것은 바로 옆 송몽규의 묘였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중국 길림성의 명동촌에서 같은 해 한 집에서 태어나 같이 자랐다.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죄목으로 재판을 받아 같은 감옥에서 19일 간격으로 옥사했다. 문익환의 『윤동주 평전』에 의하면 동주는 몽규에게 항상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활달했고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

에세이 한 편 2024.10.12

이성혁_시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찾아서(발췌)/ 초록물고기 : 이승희

초록물고기      이승희    연못가 버드나무에선  바람이 불 때마다  몇 마리의 물고기가 툭 툭 놓여났다  공중을 물들이며 스르륵 잠기는 물고기   나는 그것을 하루 종일 바라보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버드나무처럼 웃는데  공중으로도  물속으로도  잘 잠겨들었다  공중과 물속이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버드나무는  물속에 잠긴 발등을 오래 바라보며  고요하다  이게 버드나무의 마음이라면   연못 속에도  나뭇잎에서도  물고기들이 태어나고 자란다   어느 저녁  나도 툭 놓여나겠지  밤이 연못 속으로 고이고  물속은 한없이 깊어지고  나를 데려다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전문, 『맥』 2023년 겨울호   ▶사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찾아서(발췌)_이성혁/ 문학..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0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0      정숙자    조약돌들이 자수정이나 진주처럼 빛납니다. 축젯날 색종이인 양 나비들이 반짝입니다. 바람이 꿈꾸는지 이따금 풀잎이 흔들립니다. 이 공간에서는 노래 없이도 행복합니다. 저에게 노래란 외로움과 슬픔 달래려는 최대한의 노력이었음을, ᄀᆞ까스로 깨닫습니다. (1990. 12. 29.)                 불과 30여 년 사이로  저 詩-냇물 흘러가 버리고 말았군요  저곳이 바로 전생이었군요   저 별을 찾아 길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조용히 혼자 열어가면 됩니다   보세요, 조약돌도 나비도  풀잎도 그때 그대로 이따금 흔들립니다   수평적 침묵  수직적 침묵  유영했던 침묵들을   이제 하ᄂᆞ하ᄂᆞ 새롭게 이해하며  돌의 도약에 대해  풀잎의 중첩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