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양육
이영광
어려선 늙고 병든 죽음들을 키웠다
사라져서 더는 나타나지 않던 얼굴들
먼 역사를 배우듯 관광하듯
무심하고 갸우뚱한 날들이었다
자라선, 사납고 굳센 죽음들을 키웠다
높은 말을 타고 큰 칼을 치켜든 어둠이
꿈속까지 뒤쫓아왔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사로잡히곤 했다 무시로 다시 살아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잃고
돌아보면, 죽음 양육 어둠 양육을 잊은
초롱초롱한 세월이 떠올랐다 사실은 그 환한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때 생은 홀연
선잠처럼 아릿하고 또 달콤하게 가물거린다
어둠의 입 속에서 어둠을 찾는 나날이거나
잠깐의 파문과 한량없는 적요, 또는 침묵
그러나 고운 신기루 길을 막는 안개 속에
흘러가는 그때 그 시간은 또 너무 짧아서
백지처럼 백지처럼 생은 또 정신이 들고,
나는 지금 철없어 막무가내인 어둠 한 구를
소일하듯 가만히 키운다 내가 식어간다
방황 끝에 돌아와선 집으로 부쳐져 온
졸업장을 들여다보던 어느 날처럼,
골똘히 돌봐야 할 고운 숨들이 남아 있다
불쌍하지 않았던 적이라곤 없는 것!
이제 옹알옹알 말이 통하는 듯한 어린것!
죽음은 조그맣게,
점점 더 조그맣게,
잘 크고 있다
-전문(42-43)
이영광/ 詩心傳心 시심전심> 한 : 시에는 논리와 비논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칠 수도 평가할 수도 있겠지요. 고교과정의 시험은 어쨌든 논리적 영역의 비중이 높을 것 같습니다. 다만 시의 영역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시를 알고 즐기는 어려움이 이 혼란 어름에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도 아주 다르진 않습니다. 시의 신비,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인 언술의 요체를 요체를 체험하고 몸에 배게 하는 일이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똑똑한 학생들 사고와 표현에 능숙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그 똑똑함을 잘 내려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시는 지식의 무장 해제를 바라는데 오히려 시 앞에서 중무장을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지요. 말이 되는 말을 하는 데서 시작해서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는 데까지 닿거나 그 두 단계를 어떻게든 포괄하고자 합니다.
이런 소리를 하는 일, 그러니까 강의를 오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교단에 삼십 년을 섰는데 더 설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아니다 싶으면 못 해요. 스스로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은 좀 편하게 지냅니다. 우리 대담도 슬슬 마무리해야 할 듯한데, 올 한 해 어떤 걸 바라고 또 하고 싶은가요? (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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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봄(89)호 <시심전심詩心傳心/ 근작시> 에서
* 이영광/ 1998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그늘과 사귀다』『나무는 간다』『끝없는 사람』『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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