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데이트 외 1편 김선영 50년대 가을날 공덕동 301번지, 미당 선생 댁을 우리들이 방문했을 때 그분은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노란 국화향기에 젖어 계셨다. 글 쓰시는 방 벽체엔 액자도 없이 천경자 화백의 화사도가 한 점 수수하게 붙어 있었다. 벽지 속 무늬처럼 오색 물감의 꽃뱀들이 수풀 속에 엉켜 벼랑의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 쓸 때 무리 중 하나가 물감을 벽에 묻히며 기어 내려와 선생의 책갈피 사이로 스며들었다. 마당의 노란 국화밭에는 하늘에서 삽으로 퍼내리는 진한 금햇살로 광채를 이루고 있었고, '찬란하구먼' 가난한 시인은 부러진 안경테 대용으로 삼은 무명실의 귀걸개를 연신 치켜 올리며 국화의 아름다움도 함께 치켜올리셨다. 나는 시인과 국화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