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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발톱꽃과 나의 현/ 박잎

매발톱꽃과 나의 현      박잎/ 시인    내 영혼의 비할 길 없는 황량함을 매일 꿈속에서 만난다. 황량함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풀어헤쳐진 잔혹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 잿빛 미망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가슴을 진정시키려 두 눈을 감는다. 막막한 어둠 속, 홀로 가닿는 마지막 풍경은 말이 떨어져 누운 절벽이다. 어디선가 파도 소리 가없이 들려오지만 기이하게 바다가 보이지 않는 절벽. 그 절벽 아래 말이 홀로 누워 있다.   오랜만에 명월리 종점에 갔다. 보랏빛 엉겅퀴에 나비가 하얀 나비가··· 날개에 아주 쬐그마한 노랑 꽃잎을 묻히고 하늘하늘 앉아 있었다. 변두리 빈터. 한낮의 색감은 어쩌자고 이리 아름다운가. 더더욱 절망하며 '명월상회' 앞에 이르니, 개울가에 꽃이 있었다.   옅은 자줏빛 매발톱꽃..

에세이 한 편 2024.10.01

칼잠/ 조행래

칼잠     조행래    눈알을 안으로 풀어내며 꿈을 꾸지 않기로 다짐 이를 갈며 이 대신 잇몸으로 곱씹어 보아도 돌아누워도 말짱 도로 너비 없는 모로 돌아가 아무도 모르게 벼리고 누워 그것이   온다 더듬이를 가지고 혀도 또 모자라서 지팡이를 짚고 쉬지 않고 아주 느리게 달이 뜰 때 발목을 떠나 놓고 달이 지고 있는데도 아직 무릎 위 지치지 않고 두드리며 명치에 두드러기 발자국을 남길 때   목덜미에 가시 돋친 소름이 이불을 끌어 올리고 서늘해지는 발목 초조해지는 발목 둘이 딱 붙어 주거니 받거니 혼잣말과 혼잣말이 누운 날 위에 올라 쩍 갈라지더니 쏟아지는 졸음이   귓바퀴로 흘러 소용돌이치고 고막을 쓰다듬고 막을 내려야 하나 뒤척이는데 날 위에 녹아 내리고 날이 새고 갈고 또 갈던 어금니 부스러기가 ..

툰드라백조 깃털을 아세요?/ 박잎

툰드라백조 깃털을 아세요?      박잎/ 시인    어슬렁어슬렁 흰 고무신을 신고 낭인浪人처럼 풍물장을 거닐던 내가, 좌판을 펼친 날의 기분을 뭐라 말해야 할까.  윈추리며 완두콩이며 머우며 고구마줄거리를 늘어놓고 온종일 장바닥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 틈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젊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희끗희끗 늘어나는 흰머리를 보며 어쭙잖은 신세 한탄을 늘어놓던 나. 몸빼바지에 허술한 잠바를 입은 옆 할머니의 벗겨진 양철 도시락을 보고 있자니 콧등이 찡했다. 낡은 도시락 뚜껑엔 다람쥐가 그려져 있었다.  고도다 방드르디다 쿳시다 내가 꿈을 쫓는 동안, 그녀의 하루는 저렇게 저물었겠지··· 빛나는 여름 햇살 아래서 자신을 불태웠겠지··· 자식들을 키웠겠지.  나는 준비해 온 비누를 조심스럽게 늘어놓았..

에세이 한 편 202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