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오수요
이범근
한밤중 호수에 던진 돌 다음 날에서야 풍덩, 소리가 났다 아무도 따지 않아 달다 못해 썩은 과일이 떨어지고 호숫가 낚시꾼들이 먹고 버린 육개장 컵라면의 멀건 기름이 표정처럼 뜬다
문득 어두운 사람은 시체에 돌을 묶어 버린다 호수는 그걸 물 밖으로 뱉어낼 수 없고 수면은 그때마다 출렁인다 잔잔하다 호수는 스스로 출렁이는 법을 모른다 건너편 물가엔 신사용 양말만 신은 남녀가 서로를 서로에게 넣었다 뺀다 소스라친 우리에겐 수면이 없다
수심水深에 그런 치욕과 공포와 아름다움을 다 가라앉혀 놓고
호수엔 너른 둘레가 있다 한없이 원에 가까운 물가 피었다 죽는 식물과 벌레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검은 깊이를 두려워하고 신성시하고 호수가 갑자기 말라버릴 재앙에 대해서 말한다 호수는 그런 날에도 잔잔하다 비가 많이 오면 넘치고 가뭄이 오래되면 바닥에 가라앉은 백골이 드러난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빛과 자세로 폐가 있던 자리엔 겹겹이 물고기 뼈들이 쌓여 있다
-전문(p. 44-45)
이범근/ 詩心傳心 시심전심> 한 문장: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꽤 일치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수업을 하고 집에 와서 부인과 딸을 위해서 요리를 하고요. 그 수많은 요리에 대한 단상들을 모아서 책을 한 권 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틈틈이 러닝을 하면서요.
해마다 생각하는 한 문구가 있어요. '다짐은 다 짐이다'라고요. 신년의 맹세 같은 걸 잘 안 합니다. 언제부턴가 제가 성공한 사소한 과업과 성과들은 거의 대체로 운이거나 타인의 공이 컸고, 반면 제가 실패한 많은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만이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어떤 사람들과 상황들이 저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고요. 점점 더 저, 저에 대한 진심과 노력에 의미 부여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제가 들인 노력을 모두 인정받지 못해도 그것은 분한 일이 아니며 타인의 진심을 제가 다 경청하지 못했다 해도 그것이 그렇게 미안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순간의 나를 잘 살면 된다··· 도덕과 정의를 명심하고 나와 타인의 자유를 견주어 보면서요. 올해는 그렇게 또 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올해 바라는 일이 있나요. (p.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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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봄(89)호 <시심전심詩心傳心/ 근작시> 에서
* 이범근/ 201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반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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