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8 3

그대가 있기에 외 7편/ 김찬옥

그대가 있기에 외 7편     김찬옥   당당한 그대의 벽에  크레파스로 희로애락을 그렸기에  나는 뒤늦게나마 시인이 될 수 있었고  때로는 수렁에도 시를 모종할 수 있었고  제 인생의 반은 푸르를 수 있었습니다     -전문(p. 사진 22/ 시 23)      ---------    삼 대   벽과 벽이 달리는 파도에 올라탔다  숨어있는 경계가 파도보다 많이 부서졌다  발밑에서 물살이 휘어질 때  암벽 같은 딱딱한 부성도 부드러워졌다     -전문(p. 사진642/ 시 65)        -------------------    그래서, 꽃   사람은 이웃에 비수를 꽂아도    꽃은 그 비수를 딛고 넘어와   따뜻하고 향기로운 손 내민다     -전문(p. 사진 66/ 시 67)      ------..

적벽강/ 김찬옥

적벽강     김찬옥    고향 집에 혼자 남은  어머니의 눈은 늘 수평선에 걸려있었다   거친 파도에 깎여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적벽처럼  켜켜이 살집을 내어 준 자리에 갖가지 무늬를 새기고  오늘도 굽이쳐 오는 물살을 낸발로 마중 나오셨다      -전문-   시인의 산문> 中: 자연은 내가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등불이 되어 주었다. 폐경기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 평상시에 좋아하던 일들도 하나같이 다 재미가 없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반문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스스로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병원 가는 일을 접고 산책 속에 빠져 점자 같은 나를 읽어내기로 했다. 산행하다 보니 죽어있는 나를 깨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무와 꽃들과 작은 풀꽃들까지도 다시 태어난 나를 ..

어머니의 가르마/ 김찬옥

어머니의 가르마      김찬옥    쪽진 어머니 머리에 난  반듯한 길이 있어  오 형제가 굶주림은 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가르마를 뽑아 전봇대 세울 때쯤  보릿고개도 먼 신화가 되었다    -전문-   시인의 산문> 中: 슬픔밖에 모르던 내가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 스스로도 궁금해질 때가 있다. 슬픔은 소리소문없이 혼자 왔다 가는 것이 아니다. 머물렀다 간 그 자리에 나만이 풀 수 있는 암호를 남기고 갔다. 그 암호를 푸는 일이 글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물 자체인 어머니와 삼라만상을 품어주는 대자연을 몰랐더라면, 나는 글 쓰는 일을 시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여름 울 안에 살구나무라도 한 그루 있었더라면 어린 시절이 그리 팍팍하지는 않았을 걸,  아버지의 술을 피해 어린 내 영혼은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