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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슬픔 외 1편/ 이선이

여기의 슬픔 외 1편      이선이     주머니에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구슬을 모았습니다  모으느라 분주한 마음에 감추기만 했지 열어 보지 못했습니다   내 속에 내가 많다는 말은 거짓인 줄 모르기에 사실적인 거짓입니다  나는 내 앞에 있거나 내 곁에 있거나  멀찍이 뒷짐 지고 서서 발밑을 살피고 있을 뿐  영구 외출 중인 나를 기다리는 건  어디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색색의 마음입니다   내일을 살아내느라 나는 여기에 없고  누군가의 처진 어깨를 다독이느라 나는 여기에 없고  잃어버린 감정을 줍느라 나는 여기에 없고   나의 앞과 옆과 뒤에서 나는  여기의 실종자  오늘의 부재자  없는 세상을 잃어버린 구슬처럼 굴러다닙니다   정원 가득 꽃을 심은 정원사는 잡초를 뽑느라 꽃을 놓치듯  내 안의 ..

전입신고서/ 이선이

전입신고서      이선이     마당가  엊그제 입주한 감나무  허공만 바라고 서서  가난한 집 아기 젖 빠는 소리를 내며 꽃망울 밀어 올린다   달빛은 전입계 직원처럼 무심히 도장 찍고 가고   아이 알림장처럼 매일 열어보는 창문 위로  가지들 뻗어 줄까, 내 창은  저 꽃잎들 무슨 사연으로 받아 들까  궁금해하면   잎잎이 내려서서는  전입신고서 쓰고 가는  별빛들   참사慘事에 아이 잃고 이민 간 친구에게 죽은 아이가 여기 감꽃으로 피었다고  꽃피니 이별도 견딜 만하다고 차마 쓰지 못하고   일찍 떨어진 열매가 남기고 간  햇빛이며 달빛 받아  시퍼런 멍들 온몸으로 열매 되어 가리라고  썼다 지우는   애기 감꽃 속  흰 무덤 하나     -전문-   해설> 한 문장: 엊그제 등장한 꽃망울은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