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4 3

변화는 언제 일어나는가?/ 권오민

변화는 언제 일어나는가?       - 『성유식론』 다시 읽기 (11)       권오민/ 불교학자     먼저 세상에 출현한 모든 것有爲諸行이 무상한 것, 변화하는 것이라면, 변화는 언제 일어나는가? 특정의 시간, 예컨대 매일 밤 12시, 자명종이 '땡'하고 울리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섣달 그믐날 밤 11시 59분 59초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세기말이나 새로운 밀레니엄 직전에 일어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시간의 최소단위가 찰나라면, 찰나마다 일어난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변화가 전후의 상태가 바뀌고 달라지는 것이라면 세계(혹은 사물)는 찰나마다 그러한 것이라고, 생성 · 소멸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생성하는 찰나와 소멸하는 찰나마저 동일 찰나라고..

한 줄 노트 2024.10.24

푸른 계단 외 1편/ 정종숙

푸른 계단 외 1편      정종숙    새로 지은 집은 콘크리트 냄새가 났다   담벼락에 주춧돌 놓은 사람 이름이 박혀 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하늘을 안고 있다   구두 발자국 소리 나는 콘크리트 계단   너라는 집을 지어 본 사람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오래 서성였던 시간을 기억하는 계단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마주한다   그때 무엇 때문에 멈칫했는지  계단은 끝내 말하지 않는다   발소리만으로 대화는 이어지고  끊어지기도 한다   멀리 오는 너를 보기 위해서  유리벽으로 지은 집   갚아야 할 무엇이 남아 있어서  힘내서 계단을 오르면   모르는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전문(p. 32-33)     ----------------------   춥게 걸었다    숱한 표정이..

사랑하게 되는 일/ 정종숙

사랑하게 되는 일      정종숙    동쪽으로 십 킬로쯤 달려와  살게 된 동네를 사랑하게 되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듯이 그렇게   목화솜 같은 눈송이가  나뭇가지에 쌓이는 걸 보면서 이삿짐을 풀었다  막막한 걸음도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녹여주는 곳이 있어  세상은 얼어죽지 않았다   넓은 인도에는 띄엄띄엄 벚나무가 있고  가게 앞에는 옷을 입은 강아지가 있다  턱을 괴고 있는 여인의 조각상이 있는  빨간 벽돌집 마당을  담장 너머로 훔쳐보는 기쁨이 있고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테라스처럼  여름밤 치킨집 앞에는  삼삼오오 맥주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  정겨운 소란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은행나무 아래 둥지 튼  공중전화 박스에 풀풀 눈이 들이치면  괜히 전화 걸고 싶은 그리움이 있다  오래된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