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심선자
밤에 내린 눈을 옥상은 이해한다는 것인가
주저앉아 있다
어디서 가둬 놓은 바람이 한꺼번에 풀려났는지 흰 물감을 뒤집어쓰고 죽을 쒀 놓은 세상
눈동자에 떨어진 눈송이 눈이 얼굴에서 녹는다 다가와서 자세히 보면 흰 살이 죽죽 찢어져 날리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볼수록 폭탄 같은데,
엄마는 떨어진 인형의 눈알을 꿰매고 있다 잠도 자지 않고서, 인형을 다 만들면 엄마, 어디 가지 마세요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잖아요
푹푹한 솜이불 위 먼지가 폴폴, 우리가 뛰어놀기 좋은 곳, 우리의 꿈은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이 광경은 무덤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 추웠는데 따뜻하다 말하면 거짓인 것인가
걸레가 얼어붙은 밤이었기에 죽지 말자며 서로의 얼굴에 입김을 불어넣었지
흩어진 눈과 깃털과 폭탄과 먼지를 향해 우리라도 우릴 바깥으로 내치지 말자며 다짐하는 밤
엄마, 눈이 내립니다 사랑하는 것이 녹습니다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것이 고요히 내려앉아요
-전문(p.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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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화집 『시골시인 Q』에서/ 2023. 7. 31. <걷는사람> 펴냄
* 심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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