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89

김미영_인터넷 시단의 새로운 주체···(발췌)/ 깊은 밤의 시골 국도 : 장이랑

깊은 밤의 시골 국도午夜的鄕村公路      장이랑江一郞     김미영/ 復旦大學校 연구원   깊은 밤, 시골 국도는 이상스레 적막하다  달빛이 어두운 모래알 위를 구른다  어쩌다가 야간 화물차 한 대가  소리 없이 스쳐가  속도에 놀란 반딧불이는  별똥별처럼, 더 깊은 밤으로 빠져든다  이때, 어떤 이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시골 국도를 따라  새벽까지 고요히 걸어낸다  잠들지 않은 한 마을은, 멀리 떠나는 이를 눈으로 배웅한다  물처럼 찬 밤을 빌려  불 꺼진 저 먼 곳으로 향해 걷는다     -전문-   ▶메인터넷 시단의 새로운 주체, 저층 시인_2. 지식인의 풀뿌리 시(발췌) _김영미/ 復旦大學校 연구원   장이랑의 「깊은 밤의 시골 도로」를 보면, 시의 톤이 상당히 절제돼 있다. 격앙되거나 울부짖지..

외국시 2024.09.22

2000년대 이후 중국 시 동향(부분)/ 오형엽

2000년대 이후 중국 시 동향(부분)      오형엽/ 문학평론가    중국의 현대시는 한국 현대시의 경향을 조망하고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기 위해서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 중국 문단의 일반적인 관점에 따르면 1907년 루쉰魯迅이 서구 시인들의 시를 백화로 소개한 이후로부터,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발생한 문화혁명 이전까지를 '중국 현대시'로 부르고, 1970~1980년대 이후의 시를 '중국 당대시當代詩'라고 부른다. 본격적인 중국 현대시는 백화시 초기의 호적胡適 · 유대백劉大白 등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서구 낭만주의 시에 영향을 받은 서지마徐志摩 · 주상朱湘등의 신월파新月波, 서구 모더니즘 시에 영향을 받은 이금발李金髮 등의 상징파, 상징파를 계승하면서 순수시를 지향하는 대망서戴望舒 등의..

한 줄 노트 2024.09.22

21세기 중국 시단(詩壇) 풍경(부분)/ 이경하

21세기 중국 시단詩壇 풍경(부분)             "여러 소리의 기묘한 혼합"     이경하/ 중국 현대시·대중문화 연구가    1. "신新 타동사적 글쓰기"의 등장(부분)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글의 목적에 따라 글쓰기를 두 종류로 구분하며, 자기만족을 위한 글쓰기를 '자동사적 글쓰기', 지식 전달이나 독자 설득을 위한 글쓰기를 '타동사적 글쓰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6) 그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작가(ecrivain)'에 비해 ,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지식서사가'를 에크리방(ecrivant)이라 지칭하며, 작가는 '무엇보다도 자동사적인 언어의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인 데 반해, '지식서사가'는 타동사적인, 어떤 목적(설명하고 증명하고 가르..

한 줄 노트 2024.09.22

치세의 중심에 시의 누각을 세우다_경회루/ 임연태

치세의 중심에 시의 누각을 세우다         경회루     임연태/ 시인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중심에 국보 경회루慶會樓가 있다. 조선 건국과 동시에 경복궁을 건립할 때부터 있었지만 태종 12년(1412)에 수리하면서 규모를 늘렸고 이때 '경회루'라는 이름도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4년(1867) 경복궁과 함께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누대를 떠받친 돌기둥의 숫자와 모양에 음양의 이치와 오행의 도리가 담겨 있고, 마루판의 구조와 천정의 문양이 모두 정교한 솜씨로 사상적 근간을 담고 있다. 경회루는 외교의 공간으로 중요한 곳이었고 각종 연회와 강론과 시회詩會의 공간이었고 기우제를 지내거나 활쏘기와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곳으로도 쓰였다.   "백 자나 되는 높은 다락이 ..

시조와 성리학/ 원용우(시조시인)

시조와 성리학      원용우/ 시조시인 ·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시조 장르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시조가 언제 발생했느냐 하는 시기 문제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연원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향가(신라, BC 57년~992년) 의 영향을 받아 고려(AD 918년~1392년) 중엽에 발생하여 고려 말 완성되었다고 하는 학설이 지배적이고, 우리의 국문학사나 학교의 교과서에 정설처럼 굳혀져 있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시조는 성리학에서 왔고 시조 형식은 3장 6구 12소절(음보)은 성리학 원리를 적용해서 만든 것이라 주장했다.   그렇다면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성리학은 우주의 근본 원리와 자연의 순환 원리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전지인天地人 삼재설三才設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핵심이고 ..

창문의 일상/ 김영

창문의 일상      김영    네모난 바깥이  안으로 들어온다.  반듯한 도형이지만 비스듬한 오후가  깃을 들이기도 한다  서쪽의 기울기라고 하지만  동쪽에게 배운 것 같다.   지구 밖에 존재하는 각도와 도형들엔  사람이라는 주인이 있다.  측량기사들이 빨간 말뚝을 꽝꽝 박아놓은  넓이와 도형에는 새 주인이 생긴다.  아무리 지구가 돌고 또 돌면서 뒤섞으려 해도  도형들의 주인은 확고하다.   사각을 삼십 도의 각도로 접으면 지붕이 된다.  지붕 밑은 어떤 곳인가?  올려다보는 일로 부끄러우면 지붕을 얹고  들여다보는 일로 부끄러우면 커튼을 친다.  또 대부분 사람은 벽을 세우는 일에 열심이다  자신의 벽 안에 자신만의 하늘을 들여놓고  눈 속엔 엿보는 일을 숨겨놓고 있다.   하루가 들렀다 가지 않..

정과리_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3(부분)/ 서시 : 김종삼

서시     김종삼(1921-1984, 63세)    헬리콥터가 지나자  밭 이랑이랑  들꽃들일랑  하늬바람을 일으킨다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 갔으리라.     -전문-   ▶ 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3 (발췌)/ 김종삼 : 죽음과 삶의 상호교섭운동_정과리/ 문학평론가   우리가 '죽음_곁에서 삶'이라고 표현한, 두 세계에 동시에 거주하는 것. 그것은 그가 죽음을 정직하게 받아들였을 때 그가 행한 그만의 선택이다. 게다가 이 선택을 유발한 '죽음_삶'의 상황이 긴박한 인과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두 행의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에서 행 사이의 긴장을 보라. 그런데 이 긴장을 문득 느끼면서 독자는 불현듯 제1행을 올려다본다. 이 상쾌함은 '헬리콥터'가 일으켰..

고성 외 1편/ 김은우

고성 외 1편     김은우    정박한 배들이 어디론가 떠날 때 소용돌이치는 가파른 절벽에 다다르지 모든 사랑의 결말은 슬픔으로 끝나는 걸까 더 가야 할지 어디쯤에서 멈춰야 할지 고심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밤 변방에서의 실패한 사랑의 노래가 흘러나오지 지나온 길들은 모두 절정의 순간들 눈빛 머무르는 곳마다 눈동자가 빛을 잃어가고 모두가 돌아오는 시간에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지 열정으로 다정을 낭비하는 같은 듯 다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너와의 관계를 싹둑싹둑 잘라내는 시간 어둠으로 가득한 기억은 고통의 이름으로만 남아 그 시간을 기록하지 기억의 윤곽을 이루는 한껏 설레게 한 시간이 지나고 거뭇거뭇 얼룩덜룩 희미해지는 날들 얼어서 아름다운 투명한 얼음꽃 둥둥 떠다니지 끝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린란드(+해설)/ 김은우

그린란드      김은우    펭귄이 있고 북극곰이 있고 개가 있고  바다코끼리가 있고 바다표범이 있다   없는 기대와 실망이 둥둥 떠다니는  얼음뿐인 땅을 그린란드라 이름 붙인 아이러니  썰매개들이 얼음 대신 물속을 달린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과감히 놓아주는  고립의 세계에 갇힌 이곳에선 모두가 외톨이   개랑 친해져서 개에게 고기 뼈도 던져주는  과거인 듯 미래인 듯 알 수 없는 시간   나를 닮은 누군가 있을 것 같아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없다   어쩌자고 도착하기도 전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아름답고 선명한 오로라가 나타날 때  춥다고 말하는 입이 얼어버린다   귀 기울여보면 저 멀리서 바람 소리인 듯  웃음소리인 듯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발자국을 따라 침묵이 길어지는 길..

밤의 해변은 끝없이▼/ 오정국

밤의 해변은 끝없이▼      오정국    멀어지면서 저무는 뒷모습  밤의 해변은  멀거나 가깝고   수평선에 넋을 놓다가 파도 한 줄  노을빛으로 울먹이다가 파도 한 움큼  새벽 바다 어선의 불빛에게도 파도 한 자락   밀려오고 쓸려가는 무한반복의 굴굽이가  무너지고 멈춰 설 때  비로소 홀로임을 깨닫는 모래알들   제본되지 않는 모래의 책이 사방에 널려 있다  닭 뼈다귀 개뼈다귀 사람 뼈다귀가 굴러다닌다  텅 빈 모래밭에서  희고 검은 돌멩이의 시계판 위에서  발끝에서 물밑에서   물결은 겹쳐져서 출렁이지만  제각각의 찰나 속으로 사라진다   폭죽이 솟는다 허공에서 꽃피는 불꽃의 아우성  캄캄하게 메아리치는 겹겹의 구멍들  저 상처를 어찌하랴 싶지만  밤의 해변은  끝없이   널빤지와 신발짝과 폐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