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김은우
펭귄이 있고 북극곰이 있고 개가 있고
바다코끼리가 있고 바다표범이 있다
없는 기대와 실망이 둥둥 떠다니는
얼음뿐인 땅을 그린란드라 이름 붙인 아이러니
썰매개들이 얼음 대신 물속을 달린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과감히 놓아주는
고립의 세계에 갇힌 이곳에선 모두가 외톨이
개랑 친해져서 개에게 고기 뼈도 던져주는
과거인 듯 미래인 듯 알 수 없는 시간
나를 닮은 누군가 있을 것 같아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없다
어쩌자고 도착하기도 전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아름답고 선명한 오로라가 나타날 때
춥다고 말하는 입이 얼어버린다
귀 기울여보면 저 멀리서 바람 소리인 듯
웃음소리인 듯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발자국을 따라 침묵이 길어지는 길
곳곳에 백색으로 빛나는 슬픔
내리던 눈이 쉬었다 다시 내린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화자는 단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린란드'의 차가운 열기가 불가해한 매혹이 남긴 상처를 얼마쯤 다독여 주기를,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이 돌이킬 수 없는 참혹을 떠나보낼 수 있기를, 그런 적당한 때가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꿈꾸고 열망한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과감히 놓아주는" 이 해빙의 때는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찾아와 주지 않는다. "나를 닮은 누군가 있을 것 같아/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없"는 이 텅 빈 추상의 공간은 잠시 머물며 지친 마음을 쉴 수 있는 임시거처가 될 수는 있지만, 추락 이후의 시간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심리적 토대가 되어주진 못한다. 추락 이후에도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매혹이 필요하며 매혹이 뿌리 내릴 '땅'이, 서로를 지탱해 줄 구체적 타자들이 있어야 한다. 김은우의 시는 그 구체적 가능성을 쉽게 동정하지도 함부로 위로하지도 않으며 말없이 함께 견디고 위무하는, 관계의 사려 깊은 평행선들 속에서 찾아낸다. (p. 시 12-13/ 론 133-134) <이철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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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만난 적은 없지만 가본 적은 있지요』에서/ 2024. 9. 15. <한국문연> 펴냄
* 김은우/ 1999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 『바람도서관』 『길달리기새의 발바닥을 씻겨주다 보았다』『귀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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