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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하늘로/ 최영화

땅에서 하늘로      최영화    어릴 때 방에서 타고  마당에서 타던 세발자전거  아이들 자라자 천덕꾸러기 되어  처마 아래 구석진 곳 주차장이다   색 바래 남루한 몰골  세 바퀴 바람 가득 안고  옛 친구 만나 달리고 싶고  같이 지내고 싶다고 소리친다   버리려 대문 밖 들고 나가니  내리막 삐걱거리며 우는 바퀴  아이들 웃음소리 들리는 듯  까까거 까꺼거 크르릉   나무 사이 긴 장대 묶고  동아줄로 그네 걸었다  신나게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땅에서 하늘로 바뀐  빈 마당   -전문(p. 34)   -------------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펴냄   * 최영화/ 2017년『문예춘추』 & 2022년 『상징학연구소』로 등단, 시집『처용의 수염』『..

바다 로또/ 임성화

바다 로또      임성화    조간신문 사회면에 고래가 나타났다   물길을 잘못 들어 그물코에 걸린 걸까   몸 곳곳 작살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만면에 옷음 띠고 지폐 헤는 늙은 어부   벼락을 맞기보다 더 힘들다 하는데   조상이 돌봤나 보다 일확천금 누렸으니   어젯밤 엄마 고래 새끼 울음 들었을까   고향길 거친 물살 길 잃어 더듬다가   반구대 조상들 서책 읽기 전에 눈감은      -전문(p. 29)    -------------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펴냄   * 임성화/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아버지의 바다』『겨울 염전』, 동시조집『뻥튀기 뻥야』

무첨(無添)/ 박산하

무첨無添      박산하    물봉골, 산정호수  숱한 발자국에도 수면은 구겨지지 않고  물길은 골목으로 이어져 흐르고   흰옷 입은 호수 주인  친정 상이 났다며, 기어이 사진을 찍지 않는   가을이 호수에 담기고  호수가 만든 도토리 묵향, 접시에 담기어 손님을 맞는다   백 번을 참는 호수와  욕될 수 없다는 호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물길 아직도 단정하게 흐르는   돌담장  쪽문  누마루가 호수에 비치고   저 아랫동네 어디쯤엔  은행나무 하나가 속을 다 내어 주고 껍질로 산다던데     -전문(p. 26)   -------------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펴냄   * 박산하/ 2014년『서정과 현실』로 등단, 시집『고니의 물갈퀴를 빌려 쓰다』『아..

문학의 힘을 믿다(전문)/ 김미옥

문학의 힘을 믿다(전문)      김미옥/ 문예비평가    『서동시집(West-ostlicher Divan』은 괴테의 유일한 단행본 시집이다. 괴테는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즈의 『디반(Divan)』 시집을 읽고 영감을 받아 시를 썼다. 작품은 동방의 시인들과 노년의 괴테가 사랑했던 여인 마리안네에 대한 찬사와 사랑이 주축을 이루며 페르시아의 시 형식인 가젤의 운율을 독일어로 재현했다. 하이네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사"다. (p. 201~ )   작품은 초판본에 12개의 시편만 수록되었다가 후에 「유고 중에서」가 추가되었다. 동방의 시인에 대한 찬사와 연인에게 바치는 연가는 생물학적인 나이를 초월하는 괴테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지인에게 말한 창작 의도다. "서양과 동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