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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감수의 글」/ 이중원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광활한 물리학 여정     이중원/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20세기의 저명한 양자 물리학자인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은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우리 가운데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용할 줄은 아는 무척 신비롭고 당혹스러운 학문이다."  리처드 파인만도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양자 이론은 매우 유용하지만 세계의 실재, 세계상에 대해서 말해주는 바는 이해하기 어렵고 매우 혼란스럽다는 말이다. 오늘날 양자 이론이 물리학·화학·생물학·천문학 등 현대 과학의 기초이고 컴퓨터, 레이저, 원자력과 같은 현대 기술의 유용한 토대임을 생각한다면, 이는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p. 238)  카를로 로벨리는 이 ..

세상이 단순해 보였던 때가 있었다(전문)/ 카를로 로벨리 作 : 김정훈 譯

세상이 단순해 보였던 때가 있었다     카를로 로벨리 作/ 김정훈 譯    단테가 『신곡La commedia di dante alighighieri』을 썼을 당시 유럽 사람들은 세상이 천상의 위계질서를 비추는 흐릿한 거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신과 천사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행성들을 이끌고 미천한 인간들의 삶과 사랑, 두려움에 관여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우주 한가운데에서 숭배와 반항, 회개 사이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우리는 실재하는 세계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고, 그 속에 숨은 원리들을 발견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을 찾아냈습니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복잡한 지식의 전당이 만들어집니다. 물리학은 앞장서서 지식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

양파/ 박영기

양파      박영기    반 가른다    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겹겹의 괄호들  괄호 밖으로 밀려나는 어둠  괄호 속으로 뛰어드는 빛  괄호 속에서  흰 빵을 굽고 눈물샘이 넘치고   보름달을 품은 초승달과 그믐달  기도하는 손   고요한 수반에 가지런히 모은 손   뻗어 내리는 물의 하얀 발가락  솟아오르는 물의 푸른 손가락   빈 심중에 고이는 물의 근육   다시 양파   반 자른다   철렁 내려앉는 가슴  거울 속 희디흰 얼굴과 마주한 흰 얼굴   펼쳐 놓은 흰 노트   양파가 양파 속을 읽는다     -전문(p. 78-79)  ---------------------  * 사화집 『시골시인   Q』에서/ 2023. 7. 31. 펴냄  * 박영기/ 경남 하동 출생, 2007년 『시와 사』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