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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_메시지 없음(발췌)/ 격자 창문 안쪽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 권현형

격자 창문 안쪽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권현형    내가 기른 비, 내가 기른 햇볕  달콤한 야생 열매가 잔뜩 들어 있길 바란다  격자 창문 안쪽에는 죽은 액자나 말린 꽃에 대한  에칭보다는 한 그루 나무가 서 있길 바란다   단것이 필요한 날에는  햇볕을 따라 걷는 게 좋다  올리브나무를 화분에 기르고 있는 마카롱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게 유일한 행복인 날도 있다  올리브나무와 마카롱 가게가 앱 지도에  좌표로 있다면 잠시 행복 비슷한 상태가 될 수 있다   마카롱 가게의 낡은 소파를 흰 옥양목 천으로  덮어씌운 순간 흰색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흰색 천 커버는 낡은 삶을 뒤집어씌울 때도 있고  죽음을 덮어씌울 때도 있다  행복을 망상하며 햇볕을 따라 걸어 본다   막다른 구석, 막다른 삶..

상상력이란 무엇인가?(발췌)/ 뜨거운 사람들 2 : 이현승

뜨거운 사람들 2     이현승    반성도 지겹다.  형편없는 연기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는 커튼콜의 관객처럼  무의미한 반성이 반성 자체를 지운다.   내가 가장 확실하게 아는 것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 거의 없다는 것.   나는 돈벌레를 경멸하지만  순수나 양심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가만히 현실을 다그치는 눈빛을 존경한다.  돈보다 정직한 것은 없다는 말은 졸부들의 금언이지만  다음 기회가 없다는 가정으로부터  결과보다 중요한 동기는 없다는 맹목이 만들어진다.   적대야말로 얼마나 완고한 스승인가.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사랑한 사람도 없지만  자기 자신보다 미워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그토록 감정적이면서  정작 가장 선호하는 수사가 생략이라는 것은 얼마나 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