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세의 중심에 시의 누각을 세우다
경회루
임연태/ 시인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중심에 국보 경회루慶會樓가 있다. 조선 건국과 동시에 경복궁을 건립할 때부터 있었지만 태종 12년(1412)에 수리하면서 규모를 늘렸고 이때 '경회루'라는 이름도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4년(1867) 경복궁과 함께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누대를 떠받친 돌기둥의 숫자와 모양에 음양의 이치와 오행의 도리가 담겨 있고, 마루판의 구조와 천정의 문양이 모두 정교한 솜씨로 사상적 근간을 담고 있다. 경회루는 외교의 공간으로 중요한 곳이었고 각종 연회와 강론과 시회詩會의 공간이었고 기우제를 지내거나 활쏘기와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곳으로도 쓰였다.
"백 자나 되는 높은 다락이 중천에 비껴高樓百尺橫天中(고루백척광천중) 나는 듯한 기와와 복도가 하늘에 맞닿았네飛甍複道連穹崇(비맹복도연궁숭)"로 시작하는 월산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 1454~1488, 34세)의 「경회루가」는 조선의 정궁에서 이 누각이 차지하는 실용적 가치와 정신적 의미를 매우 장중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종대왕 때 경회루에서 열린 연회의 감흥을 시로 쓴 윤회(尹淮, 1380~1436, 56세)의 「경회루시연慶會樓侍宴」이 『동문선』에 전하고, 이행(李荇, 1478~1534, 56세)은 경회루에서 활쏘기를 구경하며 쓴 시를 『용재집容齋集』에 전하는데, "평안할 때 뜻밖의 변고를 늘 유념하나니居安陰雨心常軫(거안음우심상진) 기예 겨루는 간성들 활쏘기 귀신같아라較藝干城射有神(교예간성사유신)"라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 61세)과 이이(李珥, 1536~1584, 48세)는 경회루에서 중국의 사신을 맞아 시흥을 나누며 시를 지었다. 이들보다 한 세기 전 이승소(李承召, 1422~1484, 62세)는 경회루에서 일본 사신을 접대하며 시를 지었는데, "성인 교화 동쪽 멀리 바닷가에까지 미쳐聖化東漸及海陬(성화동점급해추) 부상에서 사신 보내 멀리 이곳까지 왔네扶桑遣使遠來投(부상견사원래투)"라는 첫 구절부터 은근히 일본 사신을 낮추고 조선을 추켜 올리는 감정을 시에 담고 있다.
경회루는 그 태생 자체가 정치와 외교 그리고 연회의 공간이었기에 존립하는 동안은 문학의 산실일 수 있었다. (p.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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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문학광장』 2024-2월(2)호 <한양의 문학공간 누정 · 1> 에서
* 임연태/ 1965년 경북 영주 출생, 2004년『유심』으로 등단, 시집『청동물고기』, 저서『감성으로 가는 부도밭 기행』『행복을 찾아가는 절집 기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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