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창문의 일상/ 김영

검지 정숙자 2024. 9. 21. 15:56

 

    창문의 일상

 

     김영

 

 

  네모난 바깥이

  안으로 들어온다.

  반듯한 도형이지만 비스듬한 오후가

  깃을 들이기도 한다

  서쪽의 기울기라고 하지만

  동쪽에게 배운 것 같다.

 

  지구 밖에 존재하는 각도와 도형들엔

  사람이라는 주인이 있다.

  측량기사들이 빨간 말뚝을 꽝꽝 박아놓은

  넓이와 도형에는 새 주인이 생긴다.

  아무리 지구가 돌고 또 돌면서 뒤섞으려 해도

  도형들의 주인은 확고하다.

 

  사각을 삼십 도의 각도로 접으면 지붕이 된다.

  지붕 밑은 어떤 곳인가?
  올려다보는 일로 부끄러우면 지붕을 얹고

  들여다보는 일로 부끄러우면 커튼을 친다.

  또 대부분 사람은 벽을 세우는 일에 열심이다

  자신의 벽 안에 자신만의 하늘을 들여놓고

  눈 속엔 엿보는 일을 숨겨놓고 있다.

 

  하루가 들렀다 가지 않는 창문은 없다.

  안쪽의 불빛을 동경하는 일과

  바깥의 빛을 희망하는 일을 동시에 하고 싶을 때

  창문을 등장시킨다.

 

  밤이면 네모난 안쪽이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온 사각은

  어둠을 잘라내는 일에 골몰하는 것 같지만

  한 눈금의 어둠도 덜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창문 안쪽에서는

  제 그림자를 돌보는 일이 어렵다

    -전문(p.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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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8월(416)호 <신작특집> 에서

  * 김영/ 1996년 『눈 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