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3 3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장미/ 함태숙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장미      함태숙    투명 실린더 안에 있었죠  측량하고 싶은가요  이 시대를   눈금의 영도는 사회적 온도일까요  유토피아라면 이 모든 것이 모조리 가짜이겠지만요   난처한 듯 그러나 진심을 다한 어색함으로 앞섶에 찌른 손을 빼서   운명이 다가오듯이   온 우주가 떨리네요  우리는 한계에서 각자의 얼굴을 주워요   체처럼 밀림의 손가락들이 다 잘리고  극동의 드럼통 안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사라진 지문 같은 불가항력의 손가락으로   누구를 증언합니까  물결은 무엇을 삼키고 무력한 표면입니까  저는 시간의 중독을 시간의 의지로 읽고 싶지 않습니다   투탕카멘의 관처럼 일어선 투명한 벽 속에  두 팔을 엑스자로 (상징은 크리스트인가요? 종교적 상상력도 우리를 열등하게 유목화시킵니..

어느 새벽/ 강인한

어느 새벽     강인한    깊 은 강 잔잔한 물소리 들린다  내 곁에 잠든 아내.   내가 당신 속을 끓게 한 말들  당신이 나를 미치게 한 옛날도   더러는 굽이치는 흐름이었네.   가난하고 순한 젊음에 반짝  이 새벽 촛불 하나 드리고  싶다.   우리 집 세 마리 토끼를 위해  공판장에서 과일을 머리에 이고 오던 걸음  오명가명 한 시간.   어머니 떠나시고  장독의 상한 간장 죄다 바가지로 퍼내 버린  아내의 가을도   함께였다, 50년······     -전문(p. 48)  -------------------  *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호 시> 에서  * 강인한/ 1967년⟪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장미열차』등 12권, 시선집『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비평집『백록..

죽도록, 중랑천/ 이소연

죽도록, 중랑천      이소연    여름엔 속이 훤히 보인다  당신이 그만큼 맑다는 뜻이다   어디 모래가 많은지  어디 안장 없는 자전거를 버렸는지  내가 다 안다고 믿는다  당신이 이렇게나 맑은데  모르면 다 내 잘못이겠지  기록하지 않는 이 밤 어디쯤  물고기 떼처럼 리듬체조를 한다   기록하지 않는  이 밤 어디쯤에서   당신은 나를 비난한다  잔소리 좀 그만해!  그런데도 우리는 중랑천을 걸으면서  '다정한 것이 무엇일까'  '다정은 어떻게 생겼나'   물소리가 소음이구나  불어난 중랑천이 장관이구나   여름이 흙탕이다  당신이 그만큼 엉망진창이란 뜻이다  속을 모르겠다   화낼 건 다 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이 섞여 흐른다  6호 태풍 카눈이 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