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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와 성리학/ 원용우(시조시인)

시조와 성리학      원용우/ 시조시인 ·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시조 장르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시조가 언제 발생했느냐 하는 시기 문제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연원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향가(신라, BC 57년~992년) 의 영향을 받아 고려(AD 918년~1392년) 중엽에 발생하여 고려 말 완성되었다고 하는 학설이 지배적이고, 우리의 국문학사나 학교의 교과서에 정설처럼 굳혀져 있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시조는 성리학에서 왔고 시조 형식은 3장 6구 12소절(음보)은 성리학 원리를 적용해서 만든 것이라 주장했다.   그렇다면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성리학은 우주의 근본 원리와 자연의 순환 원리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전지인天地人 삼재설三才設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핵심이고 ..

창문의 일상/ 김영

창문의 일상      김영    네모난 바깥이  안으로 들어온다.  반듯한 도형이지만 비스듬한 오후가  깃을 들이기도 한다  서쪽의 기울기라고 하지만  동쪽에게 배운 것 같다.   지구 밖에 존재하는 각도와 도형들엔  사람이라는 주인이 있다.  측량기사들이 빨간 말뚝을 꽝꽝 박아놓은  넓이와 도형에는 새 주인이 생긴다.  아무리 지구가 돌고 또 돌면서 뒤섞으려 해도  도형들의 주인은 확고하다.   사각을 삼십 도의 각도로 접으면 지붕이 된다.  지붕 밑은 어떤 곳인가?  올려다보는 일로 부끄러우면 지붕을 얹고  들여다보는 일로 부끄러우면 커튼을 친다.  또 대부분 사람은 벽을 세우는 일에 열심이다  자신의 벽 안에 자신만의 하늘을 들여놓고  눈 속엔 엿보는 일을 숨겨놓고 있다.   하루가 들렀다 가지 않..

정과리_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3(부분)/ 서시 : 김종삼

서시     김종삼(1921-1984, 63세)    헬리콥터가 지나자  밭 이랑이랑  들꽃들일랑  하늬바람을 일으킨다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 갔으리라.     -전문-   ▶ 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3 (발췌)/ 김종삼 : 죽음과 삶의 상호교섭운동_정과리/ 문학평론가   우리가 '죽음_곁에서 삶'이라고 표현한, 두 세계에 동시에 거주하는 것. 그것은 그가 죽음을 정직하게 받아들였을 때 그가 행한 그만의 선택이다. 게다가 이 선택을 유발한 '죽음_삶'의 상황이 긴박한 인과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두 행의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에서 행 사이의 긴장을 보라. 그런데 이 긴장을 문득 느끼면서 독자는 불현듯 제1행을 올려다본다. 이 상쾌함은 '헬리콥터'가 일으켰..

고성 외 1편/ 김은우

고성 외 1편     김은우    정박한 배들이 어디론가 떠날 때 소용돌이치는 가파른 절벽에 다다르지 모든 사랑의 결말은 슬픔으로 끝나는 걸까 더 가야 할지 어디쯤에서 멈춰야 할지 고심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밤 변방에서의 실패한 사랑의 노래가 흘러나오지 지나온 길들은 모두 절정의 순간들 눈빛 머무르는 곳마다 눈동자가 빛을 잃어가고 모두가 돌아오는 시간에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지 열정으로 다정을 낭비하는 같은 듯 다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너와의 관계를 싹둑싹둑 잘라내는 시간 어둠으로 가득한 기억은 고통의 이름으로만 남아 그 시간을 기록하지 기억의 윤곽을 이루는 한껏 설레게 한 시간이 지나고 거뭇거뭇 얼룩덜룩 희미해지는 날들 얼어서 아름다운 투명한 얼음꽃 둥둥 떠다니지 끝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린란드(+해설)/ 김은우

그린란드      김은우    펭귄이 있고 북극곰이 있고 개가 있고  바다코끼리가 있고 바다표범이 있다   없는 기대와 실망이 둥둥 떠다니는  얼음뿐인 땅을 그린란드라 이름 붙인 아이러니  썰매개들이 얼음 대신 물속을 달린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과감히 놓아주는  고립의 세계에 갇힌 이곳에선 모두가 외톨이   개랑 친해져서 개에게 고기 뼈도 던져주는  과거인 듯 미래인 듯 알 수 없는 시간   나를 닮은 누군가 있을 것 같아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없다   어쩌자고 도착하기도 전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아름답고 선명한 오로라가 나타날 때  춥다고 말하는 입이 얼어버린다   귀 기울여보면 저 멀리서 바람 소리인 듯  웃음소리인 듯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발자국을 따라 침묵이 길어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