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1 2

발자국이 흐느끼던 날/ 박장희

발자국이 흐느끼던 날      박장희    부리를 가슴에 묻고 외다리로 밤을 지새운 난 짓무른 눈으로 사소한 불일치에도 생각을 덧질한다 가벼워진 뼛속 공중에 뻗은 나뭇가지, 어둠의 모서리 긴꼬리에 회색빛 낮은음자리표로 앉는다 적막은 깃털만큼 겹겹이다   나의 부리와 꽁지는 점점 여위어 녹을 줄 모르는 얼음 위에 싸늘히 붙고, 침믁으로 깊어지던 악보는 높은음 쓸쓸한 박자로 깃털마다 스며들고, 훤한 햇살 아래지만 온통 검회색이다 적막은 찢을 수도 칼로 도려낼 수도 불로 녹일 수도 없는, 날개가 있어도 비상할 수 없고 허공이 있어도 자유가 없다   핑크 난 풍선 찢어지고 무너져 내린다 목 뜯기고 뽑힌 깃털 푸르죽죽 울긋불긋, 목 안에서 모래바람 회오리친다 어떤 음악도 들을 수 없고 어떤 풍경도 바라볼 수 없고..

육식 습관/ 추성은

육식 습관     추성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천적은 홍학  시를 쓰는 것과 제목을 쓰는 건 아주 다른 일   마음은 몸을 가지고, 손발의 물성을 가지고 객원으로 찾아오는구나   먼지, 태초의 마음은 먼지였을까, 먼지 이전의 모래. 모래자갈은 한때 돌이었고 돌은 한때 화석이었다고, 먼 옛적 공룡에게도 깃털이 있었다는데, 화석은 발견되었다는데, 공룡의 심장은 인간의 심장을 닮았다는 것도, 홍학에게 쪼아 먹히는 공룡 심장, 그런 거 전부 당신이 알려 준 마음이었지   당신은 내가 시를 쓰기 전  제목부터 짓는 게 나쁘다고  고치라고 했다   가벽과 비계를 세우고 집을 짓는 게 아닌  문부터 세우는 사람  그게 나라고   한 무리의 홍학이 지나간 곳에는  공룡의 뼈와 깃털만 남는다   전시된 모형 공룡 화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