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신용에 대하여/ 이승하

검지 정숙자 2019. 10. 14. 01:45

 

 

    신용에 대하여

 

    이승하

 

 

  당신은 신용이 있나요?

  대출을 원활히 받을 수 있나요?

 

  물신의 시대, 소비사회의 신은

  신용이다

  신용을 받을 수 없다면

  거래는 정지된다

  신용카드는 무용지물이 되고

  집도 절도 없이 거리에서

  맥주도 못 마시고 커피도 못 마시고

 

  대출金 카드대金 세상은 막대한 금

  상환額 부채총額 세상은 엄청난 액

  신용정보기관이여 나는 죽은 사람인가

 

  나는 채무자

  법원은 나의 전 재산을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한다

  깨뜨릴 차, 낳을 산

  나는 파산자

  파산 수속 완료 후 '면책'에 의해서만 채무에서 해방된다

 

  나는 소비하였다

  현금서비스 신용보증

  눈만 뜨면 보이는 광고마다 시 쓰라고 해서

  내수를 진작하라고 해서

  소비가 미덕이라고 해서

 

  열심히 소비하라고 해서 소비했는데

  신용을 잃었다

  나는 이제 사람이 아니다

 

 

    -------------

   *『시인동네』2019-10월호 <詩 # 1>에서

   * 이승하/ 1984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나무 앞에서의 기도』『아픔이 너를 꽃피웠다』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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