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에 대하여
이승하
당신은 신용이 있나요?
대출을 원활히 받을 수 있나요?
물신의 시대, 소비사회의 신은
신용이다
신용을 받을 수 없다면
거래는 정지된다
신용카드는 무용지물이 되고
집도 절도 없이 거리에서
맥주도 못 마시고 커피도 못 마시고
대출金 카드대金 세상은 막대한 금
상환額 부채총額 세상은 엄청난 액
신용정보기관이여 나는 죽은 사람인가
나는 채무자
법원은 나의 전 재산을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한다
깨뜨릴 차, 낳을 산
나는 파산자
파산 수속 완료 후 '면책'에 의해서만 채무에서 해방된다
나는 소비하였다
현금서비스 신용보증
눈만 뜨면 보이는 광고마다 시 쓰라고 해서
내수를 진작하라고 해서
소비가 미덕이라고 해서
열심히 소비하라고 해서 소비했는데
신용을 잃었다
나는 이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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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2019-10월호 <詩 # 1>에서
* 이승하/ 1984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나무 앞에서의 기도』『아픔이 너를 꽃피웠다』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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