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모래밥/ 유홍준

검지 정숙자 2023. 5. 5. 01:51

 

    모래밥

 

    유홍준

 

 

  공사장 모래더미에

  삽 한 자루가

  푹,

 

  꽂혀 있다 제삿밥에 꽂아놓은 숟가락처럼 푹,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느라 지친 귀신처럼

  늙은 인부가 그 앞에 앉아 쉬고 있다

 

  아무도 저 저승밥 앞에 절할 사람 없고

  아무도 저 시멘트라는 독한 양념 비벼 대신 먹어줄 사람 없다

 

  모래밥도 먹어야 할 사람이 먹는다

  모래밥도 먹어본 사람만이 먹는다

 

  늙은 인부 홀로 저 모래밥 다 비벼 먹고 저승길 간다

     -전문(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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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통영문학상 수상작품집』 역대수상자 작품_에서/ 2021. 10. 15. <도서출판 경남> 펴냄

  * 유홍준(2020년 청마문학상 수상)/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저녁의 슬하』『북천-까마귀』『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