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참여시에 대한 논문을 읽다가/ 김지녀

검지 정숙자 2023. 5. 1. 02:07

<2021, 김춘수시문학상 수상자 자선시> 中

 

    참여시에 대한 논문을 읽다가

      - 시집『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김지녀

 

 

  기타 줄이 끊어질 때의 격동과 함께 내면이라는 것

  높낮이가 큰 억양으로 뒤숭숭한 집을 악보처럼 펼쳐 놓고

  창문을  연다

 

  참여시에 대한 논문을 읽다가 설거지에 참여해야 하는 일요일의 리얼리티란

  그릇들이 유희하듯 포개어지는 것으로

  싱크대 속 하수구를 닦고

  행주를 비틀어 짜는 것으로

  단숨에 해가 떨어지는 것

 

  내가 참여하든 안 하든 불 켜지는 창문과 헤드라이트

  정면으로 달려 들어갈 용기가 부족해

  빨간불에 건널목을 건넜다

  참을 수없어서

  검은색 페인트를 칠했다 

 

  정치적인 것은 아니지만 모두 비슷해져 버린 삶 속에서

  소재의 선택이라든가 모티브의 발견

  이것을 음악이라고 말하고싶지만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 삶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오늘 같은 날엔 코트를 더욱 여미고

  비가 오지 않아도

  우산을 펼치고 도로에 참여해도 좋을 법하다

 

  어떤 것들이 밀려오고 있는가

  우리의 손에서 무엇이 자꾸 미끄러지는가

 

  참여에 참여하기 위해 한 생활을 향해

  형편없는 리듬으로 구름이 돌아온다

  참여시에 대한 논문을 읽지 않기로 했다

     -전문(p. 48-49)

 

    * 심사위원:  박상순 · 오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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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통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2021. 10. 15. <도서출판 경남> 펴냄

  * 김지녀/ 경기 양평 출생, 2007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시소의 감정』『양들의 사회학』『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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