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청마문학상 수상자 자선시> 中
2월에 동백꽃은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김승희
2월은 좀 무언가 부족한 달
동백꽃은 한 떨기 허공으로 툭 떨어진다
떨어져서도 꿈틀대며 며칠을 살아있는 꽃 모가지
낙태와 존엄사와 동반자살과 그런 무거운 낱말을 품고
선홍빛 꽃잎, 초록색 잎사귀
툭, 동백꽃은 모가지째로 떨어져 죽는다
부활이란 말을 몰라
단번에 죽음을 관통한다
더 이상 퇴로는 없다
칼로 목을 자르자 하얀 피가 한 길이나 솟구치고
캄캄해진 천지에 붉은 꽃비가 내렸다는
겨울 속의 봄날
산 채로 모가지가 떨어지고
모가지째로 허공을 긋다가 땅바닥에 툭 떨어져
피의 기운으로 땅과 꽃봉오리는 꿈틀대고
한 떨기 한 떨기가 피렌체 르네상스 같은 동백꽃,
너무 아름다워 무서웠던 파란 하늘 아래
꽃의 성모 마리아, 빛나는 한 채의 두오모 성당의 머리를 들고
툭, 무겁게 떨어지는 동백꽃
여한 없이 살았다
여한 없이 죽었다
불멸이란 말을 몰라 날마다 찬란했다
-전문(p. 12-13)
* 심사위원: 신달자 · 장석주 · 이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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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통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2021. 10. 15. <도서출판 경남> 펴냄
* 김승희/ 1952년 전남 광주 출생,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 시집 『태양 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등, 소설집『산타페로 가는 사람』등, 산문집『33세의 팡세』『베네치아 산문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등, 연구 저서『이상 시 연구』『코라 기호학과 한국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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