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파트의 글

나비/ 윤석산(尹錫山)

검지 정숙자 2024. 11. 20. 02:23

 

    나비

 

    윤석산尹錫山

 

 

  옛날 옛날 아들 하나 얻기를 몹시 바라던 어느 생원댁에서 그만 딸을 낳고 말았지요. 아들이 너무 갖고 싶은 생원님은 딸아이를 어려서부터, 아주 어려서부터 남장을 시켜서 키웠답니다. 남장한 생원댁 딸아이는 이웃집 남자아이와도 아무 흉허물 없이 어울려 놀며 자라났어요. 아이들은 그렇게 놀며 싸우며 정이 들었고,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며, 아이들은 더욱 정이 깊어졌습니다.

  나이가 들어 여자아이는 집안의 중매로 시집을 가게 됐답니다. 그래서,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아주 아주 정이 깊이 든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게 자신이 남자가 아닌 여자임을 밝히고 떠날 수뿐이 없었답니다. 상심한 남자아이는 슬프고 슬퍼 몇 날을 슬퍼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남자아이의 부모는 슬프고 슬픈 자식을 길가 모퉁이에 묻었습니다.

  신부가 된 여자아이가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던 날, 남자의 무덤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가마에서 내린 신부는 너무 슬픈 마음에 손을 벌려 무덤을 쓰다듬었답니다. 너무 슬프고 슬픈 마음으로 무덤을 쓰다듬는데, 아 아 그만 무덤이 쫙 하고 갈라지면서 신부가 무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놀란 사람들 서둘러 신부의 치마를 잡아당겼지만, 신부는 무덤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한 자락 찢어진 옷 조각만이 글쎄 한 마리 노랑나비가 되어, 훨훨 봄 하늘로 날아가 버렸답니다. 멀리 봄 아지랑이 물씬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전문(p. 91)

 

  -----------------

 * 화성 문인 보고서 2 『시인 윤석산』 '줄글 시' 에서/ 2022. 9. 28. <화성시립도서관> 펴냄/ 비매품

 * 윤석산尹錫山/ 1947년 서울 출생, 1967년《중앙일보》신춘문예(동시) 당선 & 1974년《경향신문》신춘문예(시) 당선시집 『바다 속의 램프』『온달의 꿈』『처용의 노래』『용담 가는 길』『적 · 寂』『밥나이, 잠나이』『나는 지금 운전 중』『절개지』『햇살 기지개』등, 저서『동학교조 수운 최제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