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7 3

이름 없는 아이*/ 김상미

이름 없는 아이*      김상미    네 이름이 뭐니?  저는 이름이 없어요  왜 이름이 없니? 이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니?  저는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요  아무도 제가 태어나 이만큼 자란 것을 몰라요  엄마는 제가 오월에 태어났다고 오월이라고 불러요  남들에게 저는 유령이에요 투명인간이에요  아저씨, 아줌마들이 저를 이곳에서 찾아내기 전에는  늘 이곳에 숨어 있었어요  저는 엄마가 강간당해 낳은 아이에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라요  저는 엄마가 저를 끌어안고 슬피 울 때마다 무섭고 두려워요  엄마가 저를 버릴까 봐 엄마가 저를 두고 어딘가로 가버릴까 봐  엄마가 일하러 가고 나면  아무도 없는 이 방에서 저는 햇볕도 쬐고  화분에 물도 주고 소리 죽여 그림책도 읽어요  아주 가끔은 아무도 몰..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요/ 팡츠 창(Fang-Tzu Chang)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요       팡츠 창(타이완, 1964~ )    햇빛이 쏟아집니다.  구름이 몰려와 갈라진 틈을 에워쌉니다.  새싹은 당당히 뻗어나갈  힘을 얻습니다   폭풍우 속에서는  또 다르죠.  정겹고,  세심히,   자라나는 것들을 지켜봅니다,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요.   마음속의 묘목은  어제의 죽음으로 자랍니다.  빛과 그림자가 마음껏 즐기도록 두세요  시간이 모든 것을 앗아 갈 때까지  뿌리들은 깊게 얽혀 있죠.     -전문(p. 150)    * 블로그 註: 영역본은 책에서 일독 要   -----------------  * 『상징학연구소』 2024-가을(15)호 > 에서   * 팡츠 창(Fang-Tzu Chang)/ 1964년 타이완 출생, 1990년대 하카 쓰기..

외국시 2024.08.27

남자의 일생/ 이재훈

/ A poem from Korea Lee, Jai-Hun>     남자의 일생      이재훈    풀잎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진 애벌레.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해 몸을 뒤집는다.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드르륵 끌린다.   그늘을 찾아 몸을 옮기는 데  온 생을 바쳤다.   늦은 오후.  뱃가죽이 뜯어진 애벌레 위로  그림자 잦아들고  온몸에 딱딱한 주름이 진다.   나비 한 마리.  공중으로 날아간다.   풀잎이 몸을 연다.    -전문(p. 126) * 블로그註: 외국어 대역본은 책에서 일독 要      ----------------- * 『상징학연구소』 2024-가을(15)호 / 국내 시인 외국 지면 게재>에서  * 이재훈/ 강원 영월 출생, 1998년『현대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