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1 5

청담 순호의 마음 이해와 정화 인식(부분들, 다섯)/ 고영섭

청담 순호의 마음 이해와 정화 인식(부분들)          『청담대종사전서』 (전11권)를 중심으로          고영섭    청담은 평소에 6바라밀을 좋아하였고, 그 가운데서도인욕바라밀을 수행의 기치로 삼아 이를 적극 실천하였다. 그는 누가 뭐라하든 누가 헐뜯든 간에 인욕이었다. 누가 욕을 하건 누가 혹시 때리더라도 그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참았다. 이 때문에 그는 '인욕보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정화 불사만 해도 당시 송만암宋曼菴 교정은 '수행승'과 '교화승'으로 양분해서 점진적으로 정화해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는 선학원에서 제1차 수좌대회를 열고 효봉 대선사와 의논하여 '불법에는 대처승 없다'고 대처승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자고 하였다. 이 주장은 수좌대회에서 합의되어 청담은 이후 이승만 대통..

김영임_범선이 되고 싶은 시(발췌)/ 비극의 위치▼ : 박세미

비극의 위치▼      박세미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움직입니까  태풍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휘돕니까  숲속 오후 기분 좋은 토끼처럼 뛰어다닙니까  아니면 언제나 눈꺼풀처럼 박입니까   당신이 내게 다다르는 경로를 짐작하지 못하므로  이불을 펄럭이고  형광등을 켜고  꾸벅꾸벅 좁니다  손에 든 펜이  당신의 좌표를 점치는 동안   오늘은 먼지를 잔뜩 마셨습니다  먼지의 성분을 헤아려보면서···  당신이 포함되었다는  폐에 파고든 당신을 영원히 배출할 수 없다는  확신 속에서···  깨끗하게 씻긴 폐를 양 날개 삼아 날아오르는  꿈을 꿉니다   돌연  날개가 거침없이 부풀어 오를 떄  나는 당신과 동시에  터지길 바랍니다    -전문-   ▶범선이 되고 싶은 시(발췌) _김영임/ 문학평론가   "비극위 ..

귀를 대고 진찰하는 아이/ 이민배

귀를 대고 진찰하는 아이      이민배    그 의사는  청진기 대신 귀를 대고 진찰한대   건강한 심장 소리를 들으면  폭신한 가슴 위에서 부둥켜안고 잠을 잔대   그 의사를 좋아하는 엄마는  설렘으로 기뻐 뛰는 심장 소리에 놀라 깰까 봐  숨소리도 살금살금  발소리도 살금살금   새근새근 자는 귀여운 모습만 봐도  엄마의 피곤은 사라진대.   정말 훌륭한 아기 의사야!     -전문(p. 67)     --------------   * 『문학매거진 시마 SIMA』 2023-가을(17)호 동시)>에서   * 이민배/ 2020년 『한국문학예술』에 동시 당선

동시 2024.08.21

침묵의 벽/ 강영은

침묵의 벽      강영은    세상의 가장 낡은 귀퉁이라도 되는 듯  지팡이를 내려놓은 노인과  웅크린 몸을 잠 속에 묻은 개가  단단하게 빗장 건 門에 등을 기대고 있다.   그들은 지금 벌어지지 않는 입술과  깊이 모를 눈동자로  서로의 벽을 고스란히 끌어안는 중이다   손은 없고 가슴만 있는,  눈은 없고 눈물만 있는, 벽의 힘으로  면벽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관계여,   방금 지팡이를 내려놓은 노인의 입으로  더 이상 짖을 수 없는 개의 입으로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門의 입으로  말하건대,   나에게도 부수고 싶지 않은 벽이 있다.  등이 허물어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     -전문(p. 148-149)    ---------------------------  * 『현대시』..

이승희_무한을 향해, 무한의 너머를 향해(발췌)/ 설계 : 강영은

설계     강영은    나는 내가 빈집일 때가 좋습니다.   침묵이 괴물처럼 들어앉아 어두운 방을 보여줄 때 고독한 영혼이 시간과 만나 기둥이 되는 집, 증거 없는 희망이 슬픔과 만나 서까래가 되는 집,    우주의 법칙을 속삭이는 별빛과 그 별빛을 이해하는 창가와 그 창가에 찾아든 귀뚜라미처럼 우리는 하나의 우주 속에 들어 있는 벌레라고 우는 집,    희고 깨끗한 미농지를 바른 벽이 도면에 있어 닥나무 껍질에 둘러싸인 물질의 영혼처럼 영혼의 물질처럼 나는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은 내 안에 있어 충만한 집,   내가 알고 있는 숲은 결코 그런 집을 지은 적 없어 새장 같은 집을 그릴 때마다 영혼을 설계하는 목수처럼 종달새가 날아와 얼기설기 엮은 노래로 담을 쌓는 집,   수백 년 묵은 팽나무가 지탱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