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아이*
김상미
네 이름이 뭐니?
저는 이름이 없어요
왜 이름이 없니? 이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니?
저는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요
아무도 제가 태어나 이만큼 자란 것을 몰라요
엄마는 제가 오월에 태어났다고 오월이라고 불러요
남들에게 저는 유령이에요 투명인간이에요
아저씨, 아줌마들이 저를 이곳에서 찾아내기 전에는
늘 이곳에 숨어 있었어요
저는 엄마가 강간당해 낳은 아이에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라요
저는 엄마가 저를 끌어안고 슬피 울 때마다 무섭고 두려워요
엄마가 저를 버릴까 봐 엄마가 저를 두고 어딘가로 가버릴까 봐
엄마가 일하러 가고 나면
아무도 없는 이 방에서 저는 햇볕도 쬐고
화분에 물도 주고 소리 죽여 그림책도 읽어요
아주 가끔은 아무도 몰래 집 밖으로 나가
골목 끝에서 골목 끝으로 달리기도 해요
아무리 숨이 차도 달릴 때의 저는 행복해요
아무리 매서운 바람이 내 피부를 찢어놓을 듯 때려도
저는 바람이 좋아요 진짜 살아 있는 것 같거든요
아저씨, 아줌마 제발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가 삼킨 수많은 하얀 알약들
우리 엄마 몸에서 다 씻어내 주세요
엄마는 그래선 안 되잖아요?
어떻게 이름도 없는 저를 두고 죽을 생각을 했을까요?
엄마는 그러면 안 되잖아요?
국가 시스템 어디에도 이름이 없는 저를 혼자 두고
유령처럼 투명 인간처럼 살아가게 내버려 두어선 안 되잖아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가 제 이름을 갖게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랑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학교에도 가고 친구들도 사귀고 엄마 손 꼭 잡고
내일로, 내일로 소풍도 가게 도와주세요!
저도 엄연히 이 나라의 국민이잖아요
제가 더 자라면 꼭 우리 엄마를 지키고, 보호할게요
우리 엄마가 함박꽃처럼 웃게 할게요
아저씨, 아줌마 제발, 제발, 제발
제 이름을 엄마 호적에 올려 이름 있는 아이로
국가의 보호 아래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전문(p. 232-233)
* 이 시는 출생 신고를 하지 못해 국가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쓴 시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올 7월부터 출생 미신고 아이들을 위해 출생통보제와 위기 임신부를 위한 보호출산제를 시행한다고 한다. 하루빨리 사각지대 중에서도 아주 깊은 사각지대에 가려져 있는 가엾은 아이들을 출생신고를 통해 이름도 갖고, 극가는 물론 어른들의보호를 충분히 받으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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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학연구소』 2024-가을(15)호 <연구소 초대시인/ 자선시>에서
* 김상미/ 1990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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