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물고기
이승희
연못가 버드나무에선
바람이 불 때마다
몇 마리의 물고기가 툭 툭 놓여났다
공중을 물들이며 스르륵 잠기는 물고기
나는 그것을 하루 종일 바라보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버드나무처럼 웃는데
공중으로도
물속으로도
잘 잠겨들었다
공중과 물속이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버드나무는
물속에 잠긴 발등을 오래 바라보며
고요하다
이게 버드나무의 마음이라면
연못 속에도
나뭇잎에서도
물고기들이 태어나고 자란다
어느 저녁
나도 툭 놓여나겠지
밤이 연못 속으로 고이고
물속은 한없이 깊어지고
나를 데려다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전문, 『맥』 2023년 겨울호
▶사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찾아서(발췌)_이성혁/ 문학평론가
연못과 그 옆에서 연못을 "오래 바라보"고 있는 버드나무. 그리고 이 풍경을 보고 있는 '나'. 이 세 존재자는 서로 감응하면서 미메시스된다. "연못가 버드나무" 이파리는 연못의 물고기에 미메시스 된다."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이파리는 "툭 툭 놓여"나는 물고기처럼 되는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이파리가 물고기가 됨으로써 물드는 '공중'은 연못으로 미메시스 된다. 이 풍경을 "하루 종일 바라보"는 '나'는 어떠한가. 연못 안이 되어가고 있는 이 풍경을 보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는 "공중으로도/ 물속으로도/ 잘 잠겨"든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공중이나 물속에서도 잘 잠겨들 수 있는 그는, "공중과 물속이 서로를 잘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물속에 잠긴 발등을 오래 바라보"고 있는 버드나무 같은 이다. 그는 연속의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버드나무의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이의 마음을 상상하는 '나'의 마음 역시 버드나무의 마음처럼 될 터, '나'는 버드나무로 미메시스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중과 연못이 서로 물들며 어우러지는 풍경은 '나'의 마음이 된다. 마음과 풍경이 어우러지며 하나의 세계가 형성된다. 이 세계 속에서 새로이 "물고기들이 태어나고 자"랄 터, 이 물고기들은 '나'의 마음에서 자라난 또 다른 마음이겠다. 물고기들이 "툭툭 놓여"나듯이, 새로 자라난 마음들이 "툭 놓여나"고, 그럼으로써 "나도 툭 놓여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은 새로운 마음으로 생성되고 "연못 속으로 고이"는 밤처럼 "한없이 깊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태로 "나를 데려다준 사람"은 바로 공중과 물속 양쪽 다 "잘잠겨 들었"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터, '나'는 그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시는 사물들이 서로 미메시스 되어 물드는 세계, 그리고 이 세계에 감응하면서 미메시스 되는 마음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이러한 미메시스를 통한 생성의 세계야말로 시의 시계라고 할 것이다. 풍경은 마음과 조응하면서 '다른 장소'로 생성되고, 이 생성은 새로은 마음을 방생한다. 우리 앞에 놓인 세계는 수동적이지 않다. 이 세계는 우리에게 작용하며 우리를 변화시킨다. 시는 이 포착하기 힘든 장면을 포착한다. (p. 시 191-193 / 론19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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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봄89호, <계간시평>에서
* 이승희/ 시인,1997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등
* 이성혁/ 문학평론가,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 저서『불꽃과 트임』『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서정시와 실재』 『미래의 시를 향하여』『사랑은 왜 가능한가』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시, 사건, 역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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