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벽
강영은
세상의 가장 낡은 귀퉁이라도 되는 듯
지팡이를 내려놓은 노인과
웅크린 몸을 잠 속에 묻은 개가
단단하게 빗장 건 門에 등을 기대고 있다.
그들은 지금 벌어지지 않는 입술과
깊이 모를 눈동자로
서로의 벽을 고스란히 끌어안는 중이다
손은 없고 가슴만 있는,
눈은 없고 눈물만 있는, 벽의 힘으로
면벽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관계여,
방금 지팡이를 내려놓은 노인의 입으로
더 이상 짖을 수 없는 개의 입으로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門의 입으로
말하건대,
나에게도 부수고 싶지 않은 벽이 있다.
등이 허물어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
-전문(p. 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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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7월(415)호 <커버스토리/ 시인이 독자에게 읽어주는 시 3편> 中
* 강영은/ 제주 서귀포 출생, 2000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녹색비단구렁이』『최초의 그늘』『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상냥한 시론詩論』외 2권, 시선집『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 너머의 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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