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승희_무한을 향해, 무한의 너머를 향해(발췌)/ 설계 : 강영은

검지 정숙자 2024. 8. 21. 01:45

 

    설계

 

    강영은

 

 

  나는 내가 빈집일 때가 좋습니다.

 

  침묵이 괴물처럼 들어앉아 어두운 방을 보여줄 때 고독한 영혼이 시간과 만나 기둥이 되는 집, 증거 없는 희망이 슬픔과 만나 서까래가 되는 집,

  

  우주의 법칙을 속삭이는 별빛과 그 별빛을 이해하는 창가와 그 창가에 찾아든 귀뚜라미처럼 우리는 하나의 우주 속에 들어 있는 벌레라고 우는 집, 

 

  희고 깨끗한 미농지를 바른 벽이 도면에 있어 닥나무 껍질에 둘러싸인 물질의 영혼처럼 영혼의 물질처럼 나는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은 내 안에 있어 충만한 집,

 

  내가 알고 있는 숲은 결코 그런 집을 지은 적 없어 새장 같은 집을 그릴 때마다 영혼을 설계하는 목수처럼 종달새가 날아와 얼기설기 엮은 노래로 담을 쌓는 집,

 

  수백 년 묵은 팽나무가 지탱하는 그 담장에 걸터앉아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빈집의 업일지리도

 

  욕망의 기구가 놓여 있지 않은 그런 빈집이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가슴 다친 새가 앉았다 가는 내 집이 멋지지 않아서 좋습니다

    -전문-

 

  무한을 향해, 무한의 너머를 향해/ 빈집의 따뜻함(발췌) _이승희/ 시인 

  우리는 외로워서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외롭지 않으려고 쓰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더 고독해지는 존재들 역시 시인이 아닐까 싶다. 강영은 시인은 자신의 글에서 "내 속에 들어와 완전한 탈바꿈을 이룰 때까지 한 줄의 문장을 얻기 위하여 혈투하는 운명은고통스럽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메마른 현실을 한줄기 비처럼 적실 수 있다면, 시라는 이 생물체에게 영혼과 몸을 내주는 일, 기쁜 고통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더불어 "시라는 생물체가 내 속에 있으므로 나의 언어와 세계가 부활한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어떤 거대한 생물체가 꿈틀거리며 언어 망을 형성하여 섬망譫妄없는 세계로 나를 포획해가는 것을 본다"라고도 했다. 「설계設計」는 그러한 시인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아주 오랫동안 언어의 집을 짓고, 스스로 부수고, 외면하고, 외면당하는 시간을 독처럼 견디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略···)

  그녀의 일상어가 왜 시의 문장 같았는지, 그렇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시간을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요즘의 시인의 눈빛은 자꾸만 "수백 년 팽나무가 지탱하는 그 담장에 걸터앉아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를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다. 아름답고 따스하다. 마지막 문장은 강영은 시인의 또다른 말로 마무리한다. "나는 여전히 쓰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 쓰는 일이야말로 내가 시간과 공간을 끌어안을 수 있는 가장 고독하고 자유로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p. 시 142-143/ 론 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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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7월(415)호 <커버스토리/ 에세이> 에서  

  * 강영은/ 제주 서귀포 출생, 2000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녹색비단구렁이』『최초의 그늘』『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상냥한 시론詩論』외 2권, 시선집『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너머의 새』등

  * 이승희/ 시인,1997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