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장롱/ 이종수

검지 정숙자 2019. 10. 9. 02:55

 

 

    장롱

 

     이종수

 

 

  어머니 장롱을 열어보고

  그곳이 어머니의 마음이란 걸 알았다

  금두꺼비나 황금열쇠는 없지만

  처녀 때 놓았다는 자수 이불홑청

  셋방살이 때 덮었다는 누비 이불

  울렁울렁한 금반지 원석 아닌 유리가 박힌

  반지, 목걸이를 모아둔 가방

  오봉 위에 올려놓던 밥그릇 국그릇 반찬 종지들 같다

 

  그 가운데 눈물 날 뻔한 것은

  이런 감상적인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종이가방

  안에는 급전대출을 알리는 명함 수천 장

  한때 주민센터에서 한 장에 얼마씩 주고 바꿔주던 것들이다

  아침저녁으로 시장에 나가셨다 돌아오면서 주운 것들인데

  그런 거 더 이상 하지 말라고 볼멘소리 해놓고

  죄스런 마음 들던 것보다 사무치는,

  저 한 장 주우려고 몇 번을 수그리고 무릎 꿇었을까 생각하니

  장롱 문 잡고 우는, 영락없이 집 나갔다가 돌아와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

  어머니 마음 같아서

  

   --------------

  *『딩아돌하』2019-가을호 <신작시>에서

  * 이종수/ 전남 벌교 출생, 1998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자작나무 눈처럼『안녕, 나의 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