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물 넣어주러 가는 길/ 장만호

검지 정숙자 2019. 10. 8. 02:30

 

    물 넣어주러 가는 길

 

     장만호

 

 

  해발 일천 오백미터,

  덕유산 산록에

  붕 떠 있는 사다리 논

  구름이

  한 떼의 가축들을 풀어놓는 하늘을 향해

 

  늙은 농부 하나

  물꼬 보러 올라가신다

 

  밟아도 밟아도 끝이 없는,

  허공 사다릴 밟으며

 

  길고 좁은 그 허기에 물 넣어주러 가는 길

 

  배고픔에 보채는 아이들에게

  한 술씩 덜어주던 가장의 하얀 새벽

 

  고봉 같은 공복 속으로 들이붓던

  한 사발 냉수처럼

 

  저녁의 붉은 못물을 따라 들어가는

  몇 마리의 염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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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2019-가을호 <신작소시집> 에서

  * 장만호/ 전북 무주 출생, 2001년 《세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무서운 속도』, 저서『한국시와 시인의 선택』